제주 근대 교육 시초…전교생 '만세 행진' 참여
제주 100년의 교정 속으로 <1>제주북초
'교육=백년대계'는 공식처럼 불린다. 교육의 산실은 학교다. 하지만 저출생 파고로 백 년은 커녕 몇십 년의 생존도 바라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학령인구 절벽 시대, 제민일보는 지금까지 한 세기의 역사를 이어온 '학교의 교정(校庭)'을 두드린다. 개교 100년을 넘긴 도내 학교는 사립학교를 포함해 올해 모두 16곳(개교일 기준)이다. 일제강점기와 제주4·3 등 질곡의 근현대사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학교들을 소개하며 교육의 가치를 되짚는다.
#제주 최초 '공립학교'
학교에 '최초' '처음' 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다면, 그 역사의 길이 또한 깊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공립학교인 제주북초등학교는 도내 학교 중 가장 먼저 100살을 넘겼다.
1907년 5월 19일, 제주 최초의 근대 학교이자 공립보통학교인 '제주 관립 보통학교'로 출발해 '제주 공립 심상소 학교' '제주북국민학교'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세기 동안 제주북초는 3만명에 달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제주도교육청이 펴낸 '근·현대 제주교육 100년사'를 보면 당시 윤원구 제주 군수는 1907년 제주목의 객사였던 영주관 자리에 제주 관립 보통학교를 설립했다고 기록됐다. 개교 당시 위치는 제주목공립소학교 자리인 총물당(현 인천문화당 자리)으로 알려진다. 1년 정도 이곳에서 교육하다 1908년 10월 영주관을 수리해 학교를 옮겼다. 이곳이 현재 제주북초의 터전이다.
제주북초 총동창회가 발간한 '제주북초 100년사'에는 제주군 5개 면·88개 마을의 모든 주민이 학교 설립에 힘을 보탰다고 전해진다. 제주도민의 학문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학교인 셈이다.
#전교생이 함께 외친 '독립만세'
1900년대 초 당시 도내에서 가장 큰 학교였던 제주공립보통학교에는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 학생 주도로 전교생이 만세 행진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5월 25일 사월초파일(석가탄신일)을 기념해 관음사로 소풍을 갔던 제주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돌아오는 길에 기습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매일신보 기사에도 만세 운동이 보도됐다.
1919년 3월 조천만세운동의 주역인 김연배, 김장환 또한 제주공립보통학교 출신이다. 1928년 2월 학교 내 '일제통치 부당성 폭로 게시물' 철거에 반발하며 동맹휴학을 단행하는 등 많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제주북초는 제주4·3과도 역사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다. 1947년 3월 1일 제주북초 운동장에서 열린 '28주년 3·1절 기념식'은 4·3의 시초가 됐다. 제주북초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던 이유는 당시 북초 운동장이 해방 직후 도민의 정치‧사회적인 요구를 표출하는 집회장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기의 역사였던 제주4·3을 소설을 통해 세상에 드러낸 현기영 소설가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이처럼 역사의 풍파를 거친 제주북초는 1980년대 이르러 50학급, 전교생 3000여명으로 도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도시개발 등으로 도심이 확대되면서 구도심 인구가 유출되는 현상을 겪고, 저출생 영향까지 겹치면서 1990년대 이후 학생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 같은 질곡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건재한 제주북초는 다양한 교육적 시도로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개교 100주년에 맞춰 도내 첫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됐으며, 이주배경학생이 늘어나는 환경 변화에 발맞춰 올해 제주에서 처음으로 '한국어학급'을 개설하는 등 제주에 새로운 교육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김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