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 문화가 없는 제주

허남춘 비상임 논설위원·제주대학교 명예교수

2024-07-18     허남춘

문화도시, 삭막한 도시의 삶에 여운을 주는 단어다. 국가가 문화도시를 가꾼다고 각 지자체에 신청을 독려했다. 그런데 제주시는 연속 문화도시 사업에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문화도시를 만들 제주시의 기본계획이 부실했다는 후일담이다.

서귀포는 진작에 문화도시 사업에 선정이 돼 '노지문화'를 만드는 5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사업도 더 연장되지 않는 모양새다. 그래서 지자체가 노지문화 사업을 붙잡고는 있지만 더 이상의 자구책은 없어 보인다. 제주도 차원에서 문화도시 사업을 이어받아, 기왕 해오던 사업에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제주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전시도 공연도 없다. 제주의 문화를 보여주고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고, 제주도민이 문화 속에 들어가 함께 호흡하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도 않는다.

최근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기증 유물전이 성황을 이뤘다. 제주도립미술관과 국립제주박물관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는데, 도민들의 문화 취향을 촉촉이 적셨다. 국가 보물급 그림과 유물이 주는 위안을 즐겼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이런 국가 보물급 상설 전시장이 없다.

변시지 작가의 그림은 보물급 수준인데 제주적인 것을 잘 키워낼 생각은 하지 않고, 뜬금없이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그림을 가져다 놓았다. 가족들의 기증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도 들리니 더욱 안타깝고, 변시지미술관을 만들려는 제주도의 의지도 미미했음을 방증한다.

평생을 모은 3만여 점의 보물급 유물을 무상으로 기증한 백운철 단장의 돌문화공원이 있어 그나마 자랑스럽다. 그의 염원을 담은 기증이 세계적 공원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컬렉션이 들어서게 될 '설문대할망전시관'은 몇년째 표류하고 있다. 90억의 예산을 들여 전시관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파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올 10월까지 실시설계에 이어 설치를 해야하는 판국에 기본설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6개월을 허비했다. 이제 네달 남았는데 실시설계의 근간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도지사는 이 패망 스토리 뒤에 크게 비난받을 것이다. 제주도정은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지사 2주년 기념 공연이 지난 1일에 있었다. 취임 2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에서 그간 제주도정의 성취와 향후 2년의 계획이 영상으로 소개됐다.

도민을 잘 먹고 살게 하겠다는 경제·복지 이야기는 많은데 문화라는 단어는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렇게 삭막하게 2년을 살았고, 또 그렇게 2년을 살아야 한다니 너무 막막하다. 제주는 다른 지자체보다 독자적인 문화를 지녀 아름답고 자랑스러웠는데 우주산업을 위해 문화조차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제주는 조금씩 3류 변두리로 변해가고 있다. 지역 주체가 없어지고 문화 주체도 사라져가고 있다. 1000만이 넘는 관광객이 제주도를 찾는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 덕이다. 그런데 자연도 조금씩 파괴해 나가고 문화도 도외시하는 지금 풍토에서 제주는 싸구려 관광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아예 관광의 매력도 잃게 될 것이다.

과거의 탐라국과 그 후에도 1000년 동안 위대한 신화를 지켜온 신화의 섬 제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문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제주도정이 살아나면 좋겠다. 문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에 와 있다. 하반기 임기를 문화 도지사로 멋지게 시작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