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투루 존재하는 것은 없다"...덩굴에서 배우는 조화와 공존의 지혜
이권성 채순복 부부의 '덩굴원' 신비로운 덩굴터널, 화려한 능소화 꽃길 "덩굴의 가치 알리고파"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한적한 길을 따라 덩굴식물들이 곳곳에서 터널을 이루고 돌담길 따라 능소화가 한창 꽃봉오리를 피워내고 있는 덩굴정원이 나온다. 아담한 카페도 자리한 이곳의 이름은 '덩굴원'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덩굴'에 미쳐 살아온 이권성씨와 그의 아내 채순복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덩굴식물원이다. 덩굴식물이 나무를 죽이는 식물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씻고 본연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 부부의 야심찬 목표다.
# 사라져가는 덩굴 안타까워
"갑질 당하는 덩굴식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덩굴식물만을 모아놓은 곳이 덩굴원이고, 갑질 당하는 '을'만을 모아놓은 '을의 세상'이다."
이권성씨가 덩굴에 주목해 '덩굴원 농업회사법인'을 차리고 덩굴식물원까지 열게 된 것은 덩굴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됐다. 산행을 하면서 만나는 덩굴식물들이 제거사업으로 잘리며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됐고, '덩굴이 이렇게 하찮게 여겨져도 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덩굴은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제주 생태계의 일원이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고, 오히려 나무를 죽이는 유해식물이라는 오해로 덩굴 제거사업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덩굴은 유해식물이 아니라 나무와 공존해야 할 식물이며, 덩굴은 나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무는 단지 빛을 보기 위해 위로 올라가는 지지대일 뿐이다.
으름덩굴, 멀꿀, 남오미자, 다래, 머루 등 제주에 자생하는 각종 덩굴들은 일제시기부터 집중적으로 조림된 여느 삼나무들에 비하면 훨씬 가치있고 귀중한 식물인데도 단지 덩굴이라는 이유로 나무에 붙은 덩굴식물이 제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으름, 머루 등 100여종 달해
이권성·채순복 부부가 곶자왈을 낀 너른 선흘리 들판에 '덩굴원'을 조성한 것은 9년 전인 2015년. 그동안 여기저기서 어렵사리 구해온 우리나라 덩굴식물들이 100여종을 넘어섰다.
덩굴덩굴 카페를 나서 정원으로 향하면 낮은 바위에 강한 생명력으로 터를 잡은 바위솔 군락을 만나고, 여기를 지나면 다섯개의 터널 모양으로 덩굴들이 자리잡은 덩굴원이 나온다.
이권성씨가 갖가지 덩굴을 지지대에 일일이 감아주며 가꿔온 정성에 힘입어 쑥쑥 자란 덩굴들이 이제는 시원한 터널 그늘을 만들 정도가 됐다.
덩굴터널에 들어서면 어릴적 동네 아이들에게 달큼한 열매와 초콜릿같은 꽃향기를 선물했던 으름과 멀꿀, 새콤달콜한 머루가 덩굴마다 주렁주렁 달려 추억의 한 켠에 잠들었던 감각을 깨운다.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어 관상용으로도 가치가 높은 남오미자, 작은 수박처럼 알알이 열매가 매달려 있는 노랑 하늘타리, 맥주를 만드는 원료로 코에 대면 맥주향이 나는 율초(홉덩굴), 귀한 약용식물인 개다래까지 방문객을 반긴다.
제주 바닷가에 자생하는 토종 허브로 달여 먹으면 해녀들의 두통을 해소해주는 약이 됐던 순비기 나무가 있는 순비기터널, 한창 까맣게 익어가는 열매들이 끝없이 늘어선 블랙베리 덩굴 군락도 만날 수 있다.
#7월말 능소화 만개 맞춰 축제
덩굴원의 덩굴터널이 신비로운 비밀의 정원에 온듯한 느낌을 준다면, 뒷편에는 덩굴원에서 가장 화려한 '화원'이 위치해 있다.
양반 집에만 심는다고 해서 '양반꽃', 장마철에 꽃이 피어서 '장마꽃', 구중궁궐 꽃이라서 '금등화'로도 불리는 '능소화' 꽃길이 굽이굽이 담벼락을 따라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고고하게 피어나 돌담길을 꾸미는 능소화 꽃길은 마침 장마철인 지금이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현재 한창 꽃봉오리들을 피워내고 있으면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만개한다.
덩굴원은 덩굴식물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능소화의 만개에 맞춰 7월말 쯤 '덩굴원 능소화 축제'를 개최해 많은 사람들에게 덩굴의 가치와 매력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권성·채순복 부부는 방문객들이 꽃향기와 함께 능소화를 주제로 한 체험프로그램과 다과, 음악 등으로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덩굴원은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며, 이번 능소화 축제 방문객에게는 간단한 설문 후 바위솔 화분도 증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