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이전 제주4·3 도서도 재조명
현기영, 허영선 등 문학으로 4·3 비춘 제주 작가들 책 속 인선이 살던 중산간에 있는 유적지 소개
'독서의 계절' 가을에 들려온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은 잠들어 있던 독서 욕구를 깨우기 충분했다. 작가의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4·3을 다루면서 덩달아 이전 4·3을 주제로 한 도서들도 재조명받고 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4·3 관련 도서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앞서 4·3을 알린 책을 소개한다.
△현기영 「순이삼촌」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의 대표작인 「순이삼촌」은 금기의 역사로 불렸던 4·3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1978년 발표된 이 소설은 1949년 1월 벌어진 북촌리 학살사건을 소재로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된 북촌리 학살은 무장대 습격으로 북촌마을 너븐숭이 비탈에서 군인 2명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인근 마을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북촌초 운동장으로 주민들을 집결시켜 수백명의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1979년 소설집으로 발간될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판매가 금지됐는데도 복사본이 나오는 등 대학가와 국내 문학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4·3 진실규명 물꼬를 트는 기폭제가 됐다. 현재까지도 오페라와 뮤지컬로 제작되는 등 제주 문화예술계에 영향을 미치며 4·3을 이해하는 필독서로 꼽힌다.
△현기영 「제주도우다」
현 작가가 자신의 '스완송(Swan Song, 최후의 걸작)'으로 밝힌 「제주도우다」는 지난해 발간됐다. 과거 4·3을 주제로 장편소설을 쓰겠다는 그의 목표는 「제주도우다」로 비로소 빛을 봤다.
3권에 걸친 이 책은 1943~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대작이다. 당시 어린 소년이던 주인공 안창세가 4·3의 광풍을 겪으며 마주한 고통을 드러내며 '살아남은 자'로서 과거 이야기를 손녀에게 들려주는 구성을 통해 4·3이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을 전한다.
이전 소설을 통해 4·3의 수난을 다뤘다면, 이번엔 항쟁의 이유와 원인에 집중했다고 했다. 지난해 북토크에서 현 작가는 "4·3을 겪은 주인공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며 "미체험세대가 역사를 기억하고 이어가야 한다"고 전했다.
△허영선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76년 전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서러워할 봄조차 맞을 수 없었다. 허영선 시인의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은 제주 섬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한 망자의 시선을 그려냈다. 고사리를 꺾으러 간 딸을 마중 나갔다가 순경에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 토벌대에 의해 총상을 입고 평생 무명천을 턱에 두른 채 살다가 세상을 떠난 진아영 할머니 등 4·3에 대한 도민의 기억을 토대로 문장을 풀어나간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4·3의 광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의 잊지 못할 그날의 이야기도 담았다.
△강요배 「풍경의 깊이」
제주 출신 '한국 현대미술 거장' 강요배 화백이 엮어 2020년 출간된 예술 산문 「풍경의 깊이」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강 화백 또한 미술계에 몸담으며 4·3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백꽃이 4·3의 상징성을 갖게 된 계기도 강 화백의 작품 '동백꽃 지다(1991)'로 거슬러 간다.
이 책은 4·3을 다룬 '제주민중항쟁사' 연작 등으로 시대의 아픔을 그려온 강 화백 대표작 130점이 수록됐다. 사람과 역사, 자연을 직면하는 뜨거운 마음과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가 화폭에 그려낸 제주 자연은 아릿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역사의 광품을 겪지 않은 세대도 76년 전 온 섬이 사건의 현장이었던 제주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다.
온 섬 곳곳 상흔의 흔적
지난 10일 한강 작가의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소식은 문학계 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기쁨을 안겼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상처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한림원의 평가 속 '역사적 상처'는 76년 전 제주를 할퀴고 간 역사적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한강 작가 스스로 입문작으로 꼽은「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의 역사적 상흔을 세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제주 집에 내려갔다가 70여년 전 섬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그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친구로 책 이야기 중심이 되는 인선의 집은 중산간에 위치한다. 중산간 마을은 4·3 당시 '해안에서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한다'는 소개령과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 등으로 희생자가 많았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이에 불타 없어지거나 소개령으로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해변마을로 강제 이주 후 재건되지 않은 '잃어버린 마을'이 가장 많다.
중산간 마을로 4·3 때 큰 피해를 입은 마을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이다. 가시리는 1948년 300여가구가 살았는데 초토화 작전과 소개령으로 마을이 불에 타 폐허가 됐다. 많은 주민들이 표선 한모살(현 표선해수욕장 인근)과 버들못에서 군인들에게 집단학살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노형리와 북촌리에 이어 도내에서 세 번째로 희생자가 많았던 마을로 알려졌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은 1948년 11월 토벌대의 방화 이후 굴과 들에서 피신생활을 하다 폭도로 몰려 희생됐다. 동광리 큰넓궤로 숨었던 주민들은 다시 토벌대에 발각되며 한라산 영실 오름까지 피신했지만 현장에서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된 아픔을 지니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주민들이 백사장에서 집단학살된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 4·3 당시 도내 해변에서 이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소설에 구체적인 장소와 사건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4·3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여간 온 섬 곳곳에 생채기를 남겼다. 제주 전체가 소설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3을 다룬 한강 작가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힘입어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4·3과 한강 소설을 주제로 국제문학 세미나를 열고, 소설 속 연상되는 유적지를 연계한 다크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