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것은 사랑이었음을
이끼 긴 돌담 위에 고흐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신발 한 짝 놓여 있다. 누군가 흙 속에 묻혀 있는 걸 꺼내 햇살에 말리고 있는 듯하다. 고단한 몸을 누이었던 아무개네 집 담은 무너진 지 오래고, 똥 묻은 검은도새기 양 귀를 흔들며 달려올 것 같은 질척거림이 섯단 마을 옛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섯단마을 터를 찾은 이들은 과거의 풍경을 떠올리며 웃음소리가 재깔거린다. 먹을 것을 찾아 이곳까지 내려온 이들에게 돌집은 비바람 숭숭 들이쳐도 그나마 마음 놓이게 하는 안식처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도 거할 곳이 못되는 폐허가 되어 솥단지와 술병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다만, 두 다리 오므리고 변을 누었던 디딜팡만 온전하다.
돌담의 형태로만 집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옛터의 쓸모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이는 없었다. 이것은 안방, 이것은 고팡, 이것은 정지…, 엇갈리는 의견들은 분분했다. 평수가 그나마 넓으니 안방이고, 정지와 가까운 듯 하니 고팡이라는 논리는 허술했으나 그럴듯하다. 안방과 부엌 가까이에 두고 채광과 환기가 잘 되는 곳에 '고팡'이 있었다는데, 햇빛이 들어오는 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 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어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가 예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께었다
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집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넷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불으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백석 시 「고방」 전문)
원문 그대로 읽어야 제맛인 시들이 있다. 백석시의 참맛이 느껴질 때는 평안북도 사투리 그대로 읽힐 때이다. 하지만 단어의 뜻을 몰라 의미를 헤아릴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한다. 첫 행부터 걸린다.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평안북도에서는 시집간 딸을 '집난이'라고 한단다. 송구떡은 소나무 속껍질까지 만든 떡을 일컫는다. 송구떡은 시간이 지나면 너무 딱딱해져 쳐다보지 않게 되는 떡이다. 어쨌든 시집간 딸이 집에 들어와서 송구떡처럼 오래 남아 있다면 그것도 참 딱한 일이었겠다.
돌담을 둘러싸고 대나무숲이 우거졌다. 집의 뒤편으로 대나무가 우거졌을 터이다. 대나무를 잘라 바구니도 짜고, 모자도 만들고, 꼬치를 만들기도 하였다. 돌담을 둘러싼 대나무숲을 보면서 60대 이상의 중년들은 웅성거린다. 맞장구를 치던 이들이 합세하여 한결같은 문장을 만들어낸다.
"저 대 끊어단 궤기적 허곡 해나지 안해서게. 그건 우리 아바지가 해신디, 막 잘해나서. 궤양궤양 허멍. 궤기적 헐 때만큼은 우리아바지 성질이 막 순해여. 조상신딘 잘해사 될 거 아니라게 ".
아버지를 왜 '아바지'라 발음할까? 'ㅓ'와 'ㅏ' 차이가 크다. 발음할 때 입을 어떻게 오므리고 벌리느냐의 차이지만 그 의미는 바지 치수 28인치와 32인치 만큼이나 크다. 입모양의 크기가 아버지의 존재감과 더불어 그에 대한 감정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건 그렇다치고 해석을 하자면, 제사상에 올릴 고기적을 아버지가 주로 했다는 말이다.
그때만큼은 아버지가 순하게 보이더라는 말인데 왠지 슬프다. 제삿날 이외의 날들은 아버지가 순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들리니 말이다. 아마도 술독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날들의 연속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며 잊고 싶은 일들이 많았으나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가 지긋지긋해서 잊고 싶었을 것이다. 폭군 또는 괴물로 비화되는 숱한 아버지들. 약간의 과정이 더해졌다해도 아버지의 폭력을 기억하는 이들은 너무 많다. 그것이 확장되어서 국가폭력, 전쟁과 같은 형태로 발생하는 모든 폭력에 대문자 아버지가 적용되는 것이다.
한강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채식주의자'는 육식으로 대변되는 폭력에 맞서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영혜(채민서 역)의 이야기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되고자 한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형부 민호는 말한다.
"베트남 참정용사 출신의 장인이 반항하는 처제의 뺨을 때리고 우격다짐으로 입 안에 고깃덩어리를 밀어넣은 것은 아무리 돌아봐도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섬뜩하게 기억하는 것은 처제의 비명소리였다. 고깃덩어리를 뱉어낸 뒤 과도를 치켜들고 그녀는 가족들의 눈을 차례로 쏘아보았다. 흡사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그녀의 눈은 불안정하게 희번덕이고 있었다"(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영혜가 돌연 공표한 채식주의 선언은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아버지는 고기를 먹지 않는 영혜에게 고기를 먹을 것을 강요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행동에 영혜는 발작을 일으키며 과도로 손목을 긋는다. 폭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고, 고깃덩어리를 우적우적 씹어먹은 자신에 대한 가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난 무서웠어. 아직 새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한강 「채식주의자」 중에서)
어느날 문득, 내 안에도 폭력성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내 몸이 폭력의 역사임을 자각하는 날이 올 때 손목을 긋는 무모함은 아닐지라도 자학과 애도와 반성이 뒤섞인 괴로움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온 세계가 전쟁과 재난과 폭력으로 뒤범벅이 되어 2024년 한 해 마무리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내가 가한 일말의 폭력에 대해서는 머리 숙여 반성하고,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해서는 싸락눈처럼 차갑게 철퇴를 내리칠 것을 주저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