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산업의 대가, 멸종의 위기
김유정의 제주도 28. 맹수가 없는 섬
한라산은 선선이 지켜
생물 생존 선택지 줄어
제주 이동철새 월동지
인간의 미래는 점점 불안한 것은 행복한 인류세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인류세는 산업혁명 이후 편리함과 화려한 생활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에 따르는 생태환경은 짙은 어둠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다섯 번의 멸종을 겪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지금 여섯 번째 멸종 위기 앞에 선 우리는 생존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계는 위기 앞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곳곳에서 자원과 영토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늘 핵 위험의 공포가 있으며, 물과 불, 바람의 위협이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틈새에서 약자가 된 생물종들의 죽음은 인간종의 최후를 예측케 하고 있다.
원나라가 1276년(충렬왕 2) 탐라에 군민총관부를 설치하였다. 이듬해(충렬왕 3) 에는 동·서아막(東西阿幕)을 설립하여 소·말·낙타·당나귀·양을 방목하고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이들을 감독하였다. 1300년(충렬왕 26)에 동도현과 서도현을 설치하였는데, 대촌현, 귀일, 고내, 애월, 곽지, 귀덕, 명월, 신촌, 함덕, 김녕, 호촌, 홍로, 예래, 산방, 차귀 등 15개 현이었다. 이 해에 원나라의 기황후(원래 이때는 명종의 모후인 유성황후가 황실마를 방목하였다. 탐라에는 뱀, 독사, 지네가 많아 만약에 회색뱀을 보면, 차귀신이라고 하여 죽이지 못하게 했다. 고려시대 현촌에 특별한 것은 제주에 없는 동물로 마을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래현인 경우 '사자 예(猊)'자가 있고, 호아현은 '여우 호(狐)"자를 쓰고 있다. 전승되는 말에 의하면 고려시대 탐라에는 신선사상이 깃들어 있었다. 한라산을 지키는 신선이 사는 집은 산방이고, 좌우로 신선이 거느린 동물들을 배열했다. 지명에 보면, 호위 무사인 형제섬을 비롯하여, 동물로는 말(馬羅島), 호랑이(虎島:범섬), 사자(猊來), 토끼(兔山), 소(牛島), 뱀(遮歸의 신:원래는 蛇歸라는 설이 있다)을 거느리고 있다. 물론 그럴듯한 민중의 상상력이다.
그러나 지명과는 달리 15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에 맹수가 없다고 했다. 맹수라고 하면 곰, 사자, 호랑이, 늑대 등 사람이나 초식동물에게 사납고 위협적인 동물을 말한다. 물론 지리적인 요인으로 제주가 섬이어서 그럴 것이다. 다시 이 기록은 17세기 「탐라지」로 이어지는데, "산무악수(山無惡獸·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없다)"라고 하여, 호랑이·표범·곰·승냥이·이리 등 사람을 해치는 짐승이 없고, 또한 여우·토끼·부엉이·까치도 없다고 했다. 「탐라자」 '토산'조의 동물로는 말·소(황소, 흑소, 얼룩소:필자)·사슴·노루·돼지·살쾡이·해달·지다리(너구리)가 있다. 물론 조선시대 제주는 국영 목장이 돼 마·소목장이 성행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동물에 대한 분류체계가 허술하여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누락되었다. 특히 조류는 제주도가 철새 도래지인 까닭에 새의 종류가 매우 많지만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까마귀와 백로 정도는 틈틈이 조선시대 시문에 나오기도 하고, 상상의 동물인 용은 바다 해신이 돼 무속신으로 나온다.
전설의 동물 백록은 16세기 저서인 「남명소승」에 처음 등장했다. 백록에 관한 이야기는 백호 임제(林悌, 1549~1587)가 한라산 등반 시 영실의 존자암 노승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17세기 바다 생물로는 바다거북·조개·앵무조개는 우도와 가파도에서 나고, 사향쥐(香鼠)를 비롯하여 전복·모시조개(黃蛤),옥두어(玉頭魚·옥돔)·은구어(銀口魚·은어)·크고 작은 상어들·도어(刀魚·갈치)·고도어(古刀魚·고등어)·멸치·문어와그밖에 생선(生魚)들이 잡힌다.
18세기 이형상이 저술한 「남환박물(南宦博物)」에, 들짐승으로는 살쾡이·오소리·돼지·사슴 등이 있다. 여전히 사나운 동물이 없다는 기록은 앞의 문헌과 비슷하다. 이 문헌에서는 날짐승, 즉 조류도 기록하고 있는데 매·꿩·까마귀·솔개·제비·참새·갈매기·백로·두루미·두견새·앵무새·기러기·올빼미·부엉이 등 14종이 언급돼 있고, 황새와 까치는 없다고 전하며, 대형 어류로는 상어·고래·악어·수달·해달 등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과거 동물의 역사 기록에는 누락된 것도 있고, 이미 멸종된 것들이 있다. 한라산의 사슴은 지나친 정기적인 진상 때문에 조선 말기에 이르면 멸종하였고, 지금은 그 자리에 노루가 있으며 멧돼지도 자주 사람들에게 목격된다. 뱀 또한 산과 계곡은 물론 민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과다한 농약의 사용으로 밭 주변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버려진 개들은 야생의 들개로 변해 등산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마을. 해변, 길가를 가리지 않고 들고양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모리 타메조(森 爲三)는 제주도 동물을 조사했는데 날개를 가진 동물로는 볼수염박쥐와 대백로, 황로, 큰덤불해오라기, 느시, 찌르레기 등 6종은 미기록이고, 두견새 울음도 들었다고 한다. 이 6종을 합쳐 제주도 조류는 120종이 된다고 했다. 제주꿩은 육지의 꿩과 같은 종이고, 노랑딱새도 육지의 흰눈썹황금새라고 한다. 제주에 동백나무가 많은 관계로 동박새와 휘파람새가 극히 많다고 했다. 또 그는 제주도 조류의 특징을 말했는데 조선반도(한반도)에는 까치가 많은데 제주도에는 까치가 한 마리도 서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989년 어느 일간 스포츠 신문사가 창간 20주년 이벤트 행사로 아시아나 항공사의 도움을 받아 까치 50마리를 제주도에 풀었고, 그 까치가 순식간에 늘어나면서 제주도의 생태계가 교란되고 말았다.
2008년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의하면, 제주도 육상동물상은 시베리아 아구와 만주 아구에 속해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분포하는 공통의 종들이 많고, 제주도는 동양구에 속하는 종들이 있는데 한라산의 기온 차이에 따른 다른 동물상이 나타난다. 이를 테면 해안저지대나 상록 계곡림에서는 아열대성에 속하는 곤충류나 참개구리, 맹꽁이, 팔색조, 물꿩, 흰날개해오라기와 같은 종들이 나타나며, 한라산 고지대에서는 산굴뚝나비, 가락지나비와 같은, 한대성 곤충류가 서식한다.
특히 이동성이 약한 일부 양서류, 조류, 포유류의 경우는 같은 종이라도 제주도롱뇽, 제주휘파람새, 제주큰오색딱다구리, 제주족제비, 제주동물쥐와 같이 제주 고유의 종이나 아종으로 진화된 동물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제주도가 동물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무당개구리, 맹꽁이, 줄장지뱀, 쇠살모사, 누룩뱀의 남방한계선이 되고 있는가 하며, 비바리뱀의 북방한계선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제주도는 이동철새들의 중간기착지, 번식지, 월동지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