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역사에 한줄기 빛, 제주도민과 함께 비춰냈다

창간부터 4·3과 함께한 제민일보 숨 죽인 반세기 침묵 깨고 진상규명 기폭제 제주도민 수천명 설득 10년간 4·3 기록 노력 4·3특별법 제정·기록유산 등재도 한 축 담당 이제는 전국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4·3 교훈

2025-04-13     윤승빈 기자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민일보가 2008년 10월 24일 제주4•3 60주년 기념사업으로 제주4•3평화공원에 타임캡슐을 설치하는 모습. 타임캡슐은 2108년 10월 24일 개봉된다.

제주4·3은 반세기 이상 금기의 영역에 갇혀 있던 어둠의 역사였다. 4·3을 글로 표현해도 범죄가 되던 시대의 한 가운데 제민일보가 있었다. 이념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절조차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제주4·3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민일보는 창간과 동시에 '4·3은 말한다'를 연재했다. 역경속에서도 4·3의 진실찾기를 위해 부단히도 애쓰고 있는 제주도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민일보는 1990년 6월 2일 창간호부터 '4·3은 말한다'를 10년간 연재하면서 4·3의 진실을 드러내는 한 축을 담당했다.

△4·3을 세상에 알리다
4·3 진상규명 노력은 1960년대에도 있었다. 4·19혁명 직후 4·3의 진실을 증언한 기록들이 보고서로 작성돼 국회에 제출되는 등 4·3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4·19혁명 다음해 5·16쿠데타가 발생했다. 후대는 당시를 4·3에 관한 한은 말도 꺼낼 수 없었던 세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침묵의 역사가 30년이나 지속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모두가 침묵해 있지는 않았다. 1978년 유신시절 누구도 입에 담지 못했던 4·3을 제주출신 소설가 현기영씨가 '순이삼촌'으로 세상에 알렸다. '순이삼촌' 역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1980년대까지 도민사회에서는 4·3 진상규명을 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민일보의 시작도 4·3이었다. 제민일보는 창간부터 1999년 8월28일까지 456회에 걸친 기획보도를 통해 4·3 희생자 유가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다. 물론 4·3을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되던 시절이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4·3취재반은 수천명의 제주도민을 설득하며 생생한 증언을 채록하고 해외에서 4·3관련 자료를 찾아내 세상에 공개했다. 

△희망의 메시지 싹틔우다
도민사회와 제민일보의 노력은 국회를 움직였고 정부를 움직였다. 새천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된 것이다. 

이후 진상규명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2003년 6월 정부는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를 공식 채택했고 같은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원수 최초로 제주4·3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어 2006년 4월 3일 제주를 방문해 4·3영령 앞에 고개를 숙였다. 

도민들은 제주4·3 40주년에 진상규명을 소망하는 씨앗을 틔웠고 50주년에 전국을 움직였다.  그리고 제주4·3 60주년이 되던 해 제주4·3평화기념관이 개관했다. 제민일보는 4·3의 새로운 출발을 염원하는 도민과 유족들의 뜻을 담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제주4·3 60주년 기념 타임캡슐 매설사업'을 진행했다. 

제민일보는 또 2004년부터 평화의 섬 제주국제마라톤대회를 매년 4월 전후 개최하면서 4·3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4·3 70주년을 한해 앞둔 2017년에는 4·3의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라는 기획보도를 통해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제언했다. 이로 인해 4·3 70주년 사업으로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평가다. 

제민일보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4·3이 80주년을 넘어 90주년을 맞는 해에도 역사의 한 축에 도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오는 2108년 10월 24일 타임캡슐이 열린다. 제민일보가 도민들과 함께한 4·3의 역사, 교훈은 물론 험난했던 진상규명·명예회복 발자취를 후세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