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미학
<책 읽어주는 남자> 틱낫한 「고요의 힘」
이 세상은 어디서나 항상 소음이 가득하다. 사람과 기계가 만들어 내는 온갖 소음이 갈수록 세상을 아비규환으로 만들고 있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가 힘들어 때로 고요한 장소와 시간에 빠져들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고요와 적요의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 내면에 가장 심오한 삶의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
우리의 주변은 물론 머릿속은 늘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타인과 연결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더욱 텅 비어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을 모두 놓치고 만다. 듣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내면으로부터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부처님은 우리의 진정한 집은 '자기의 섬'이라고 불리는 내면의 평화로운 공간이라고 했다. 그곳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첨단의 전자 통신 매체의 발달로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에 반응하면서 SNS, 유튜브, 스마트폰에 중독되고 있다. 사람들은 갈수록 세상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자신과의 대화는 단절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 드러나게 하려면 끊임없이 계속되는 생각의 소리들, 즉 내면의 속삭임을 계속 해야 한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를 차단하고 마음의 공간을 확보해야만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음의 홍수 속에서 고요의 시간을 갖는 것은 마음에 평정심을 찾고 유지하는 명상의 힘을 얻게 한다. 고요의 시간은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속에 모난 '각'이 아니라 둥근 '원'을 만들어 인생과 세상을 평화롭고 원만하게 생각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자각할 수 있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발견할 수 있다. 멀리 흩어져 있는 마음을 눈앞으로 데려와 삶의 현실을 올바르게 마주 볼 수 있게 한다.
어느 적막한 산사의 고요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깊은 산 속에 자리한 사찰은 이른 저녁부터 어둠 속에 묻히고 있었다. 어둠으로 빠져드는 산사는 적멸의 공간으로 저물어 가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엄숙한 작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진 사찰이 주는 고요에는 아름다운 감동이 담겨 있다. 겨울나무 마른 가지 끝에 댕그라니 하나 남은 감처럼, 고요하기에 더욱 강렬한 엄숙함이 우러나고 있다. 어둠에 잠겨 사라지는 아쉬움에는 소멸하는 것들에게서 나타나는 쓸쓸함이나 아쉬움이 함께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둠으로 변해가는 산사에도 그런 감응이 없을 순 없지만, 절을 가득 채운 나무와 숲은 함께 소멸하는 친구가 되어 빛에서 어둠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고요의 세계로 바뀌어 간다. 고요는 적막과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면서 따뜻한 우정의 시간을 맞는다. 고요는 세상의 만물과 벗하면서 애정의 눈길을 주고받는다. 서 있는 것은 서 있는 대로, 앉아 있는 것은 앉은 대로 모든 개체를 하나로 만들며 서로에게 스며든다. 소멸이 만드는 고요와 어둠은 모든 경계를 지우고 하나가 된다. 소멸하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만들면서 지상의 온갖 갈등과 변절과 배신을 고요 속에서 무화시켜 버린다.
우리들의 잡다한 근심과 걱정은 결국 목적 지향의 삶과 연결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론가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오히려 때로 '목적 없음'의 삶이 깊은 안목을 위한 깨달음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눈앞의 무언가를 위해 성취하기 위해 좇아 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무언가와 연결되어 머무를 뿐이다. 고요 속에 무념으로 앉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 없음이 된다. 고요는 우리에게 자발적이고 신선하며 고독하고 광대무변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온다.
선승들은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마음을 챙기는 명상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명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용히 앉아 있거나 생각을 끊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지식이 담긴 내용에 빠져 침몰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깊고 넓은 생각의 호수가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생각과 감정, 느낌을 내려놓는 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고요'에 이르기 위해서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의 현존(정체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틱낫한 스님은 말한다. 헛된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기, 그것은 '천둥 같은 고요'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