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나무 아래서 듣는 비정성시
어디선가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가 나를 불러 발걸음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주렁주렁 열린 등나무꽃이 장관이다. 꽃향기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이 얼마 만인가! 꽃나무 아래서 쉬어 갈 수 있는 평온을 얻는다는 게 세상 좋기만 하다. 이 정도의 쉼에 만사형통을 느낀다는 게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좋긴 좋다. 등나무꽃이 흐드러진 정원을 갖는 꿈은 다소 사치라 할지라도 내가 걸어가는 길에 이런 그늘을 만나 잠시 쉬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그늘, 이게 평온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등꽃나무 아래서 듣는 비정성시
여린 손가락 마디마디
빼곡하게 내걸어둔 분부심이 있어
휘어진 등짝이 모처럼 환해진다
세상에 호명받지 못한 것들조차
저 등불 아래 무릎 맞대고 앉으면
시리고 비좁았던 마음에서
따뜻해질 것 같은데
예고 없이 혓바늘 돋듯 한 일상이 아려도
꽃등불 저리 내걸리면
무거워진 보따리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삶의 층계는 가파를 거라며
삶의 안쪽은 끓는 물주전자 뚜껑처럼 달그락거리는 거라며
꽃 같은 말로 토닥여주던 너 같아
굽은 등 위 마알간 메아리로 스며 내리는
사월이 다 질 무렵
봄이 자글자글 여물어가는 나지막한 오후
(박숙경 시 「등꽃」 전문)
노래가 절로 나온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가 흘러나오다 금세 입을 다문다. 얼마 전 선배가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목련꽃 그늘이 있어"라고 아차 싶었다. 목련꽃 그늘을 본 적이 없다. 목련꽃의 매혹에 압도되어서 그동안 그의 그늘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도 같다.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어디선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박목월 시인이 이화여고 재직시, 목련꽃이 핀 잔디밭에서 여학생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쓴 시에 김순애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고 한다. 목련꽃 그늘이 있거나 없거나 지금은 등나무 꽃 아래에 있다. "예고 없이 혓바늘 돋듯 한 일상이 아려도" 꽃그늘 아래서는 잠시라도 "무거워진 보따리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기분이었다.
꽃그늘 아래 복닥거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오후가 있었다면 쓸어내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그런 밤도 있다. 하루에도 사람의 마음은 널뛰기처럼 출렁거린다. 꽃과 바람, 영화는 내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시약스푼 같다. 영화 '비정성시'는 대만의 아픈 역사를 다룬 영화다. 대만의 2·28사건을 다룬 역사영화라지만 3대에 걸친 비극의 연쇄를 얽은 한 편의 가족 드라마다. 영화는 1945년 대만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임아록의 가문에 손자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는 장개석 정부가 들어선 시기이며, 임씨 가문의 4형제는 장사를 하는 첫째 문웅(진송용 역), 일본 군의관으로 간후 행방불명된 문상, 불량배가 된 문량(고첩 역), 청각장애를 가진 문청(양조위) 등이다. 샤오벤이라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문청은 지식인 청년 오관영(오의방 역)과 함께 살면서 불안한 시국에 눈을 뜬다. 형 문상이 일본에 징용돼서 일했던 것을 빌미로 문량과 문웅을 전범으로 당국에 고발당하는 일을 겪으면서 문청의 불안과 분노는 더욱 커진다. 결국 친구인 오관영이 잡혀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는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는다. 그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고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가족사진이다. 영정사진이 되고만 그의 얼굴에는 언어를 잃어버린 음악이 흐르고 있다. 어떤 감성사전도 이 표정의 의미를 확실히 설명해주지는 못하리라. 쉼표가 없는 어떤 음악, 그것은 한 편의 시라고도 할 수 있으리.
모든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이 살던 시절의 공기가 고여 있다/따뜻한 말속에 따뜻한 곰팡이가 피어 있듯이 모든 영정 속에 흐르는 표정은 그 사람이 지금 숨쉬고 있는 공기다 영정을 보면서 무엇인가 아득한 기분을 느낀다면 내가 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이곳을 느끼고, 기억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이 이쪽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나의 영정엔 어떤 공기가 흐를까/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붉은 공기가 된다 (김경주 시 「비정성시」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