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민족사의 상처 보듬다
절망 속에서 믿음·사랑으로 격정의 시대 관통
차인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배우 차인표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독창적인 구성, 함께하고 싶은 선한 의지를 가진 매력적인 인물들, 백두산을 배경으로 한 자연 묘사에 대한 고증과 통찰, 밀도감 있는 스토리텔링을 두루 갖춘 아름다운 서사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고국을 떠나 70년 만에 필리핀의 한 작은 섬에서 발견된 쑤니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담은 이야기다.
작가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채 가난하고 핍박받던 시절을 맨몸으로 버텨 낸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집필을 시작했다. A4 용지 20장 분량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10년의 집필 기간 동안 데이터 유실로 의지가 꺾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후, 더욱 진정성과 사실에 근거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소설로 완성됐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백두산 기슭의 호랑이 마을. 엄마와 동생을 해친 호랑이 백호를 잡아 복수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호랑이 마을로 찾아온 호랑이 사냥꾼 용이와 촌장 댁 손녀 순이 그리고 미술학도 출신의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등장한다. 그저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었던 그 시대의 순수한 젊은이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마주한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 헌신적 선택으로 격정의 한때를 관통해 나간다.
작가는 '사랑과 용서, 화해'라는 주제 의식을 진중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내면서도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속도감 있고 밀도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또한, 치밀한 세부 장면 구성과 고증을 거친 백두산 마을의 수려한 풍경 묘사는 읽는 내내 머릿속에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를 정도로 생동감 넘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 준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평온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이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민족사의 상처를 간직한 이들을 보듬는 차인표 작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결책. 1만7000원.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이 됐나"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작가가 신작 산문 「단 한 번의 삶」을 출간했다. 6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유료 이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에 2024년 연재됐던 글을 대폭 수정하고 다듬어 묶었다. '영하의 날씨'는 초기 구독자의 초대로만 가입이 가능한 서비스로 화제를 모으며 연재 당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은 작가의 지난 산문들보다 더 사적이고 한층 내밀하다. 김영하는 '작가 김영하'에서 벗어나,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말을 건넨다. 14편의 이야기에 담긴 진솔한 가족사와 직접 경험한 인생의 순간을 아우르는 깊은 사유는 우리를 멈춰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가. 생각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내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쉬운 위로나 뻔한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담담히 풀어낸 솔직한 경험과 고민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과 함께, 두고 온 시절에서 발견한 자기 삶의 장면들을 기록해보길 권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나는 어떻게 나 자신이 됐는가" "이 단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등과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답을 적어봤다. 이제 독자 차례다. 책장을 덮고 난 후, 자신만의 기록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복복서가. 1만6800원.
제주 사람들 삶에 바치는 헌사
황금녀 「눈물도 곱아불언마씀」
향토색 짙은 제주어로 시를 써온 황금녀 시인의 신작 시집 「눈물도 곱아불언마씀」이 출간했다. 총 5부에 걸쳐 66편의 시를 실었다.
시인은 눈물도 숨어버릴 만큼 지난했던 제주의 시간을 애잔한 눈길로 돌아본다. 그 속에는 가난했으나 다정했던 유년의 기억이 있고, 젊은 부모와 친구와 이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무참하게 무너뜨린 폭력의 역사도 있었다. 특히 제주4·3의 아픔을 담은 시들을 시집 전반에서 볼 수 있다.
다소 긴 호흡으로 그 시간을 더듬어가면서, 시인은 제주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위무하고 있다. 입말로서의 제주어가 시적 언어로 그려지면서 제주어 서사시의 형식을 띠기도 한다.
이 시집은 눈물도 숨어버린 제주 사람들의 삶에 바치는 헌사이면서 그 뿌리로부터 이어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와 기원을 전하고 있다. 한그루.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