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담론] 가시어멍, 폭삭 속았수다
박상수 비상임 논설위원·전 제주관광대학교 부총장
넷플릭스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본 제주도민들은 옛날 생각에 잠겨 회상을 해보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70여년 전 우리 어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환경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을 것이다.
필자는 연속극에 빠져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서울에 있는 딸이 그 연속극을 보고 밤새 우느라 잠 못잤다고 하길래 딸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드라마를 보면서 불현듯 제주의 내 장모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4·3을 겪은 제주의 어머니들이 척박한 환경을 강인한 삶의 능력으로 이겨내며 집안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것을 보는 듯했다.
나의 장모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학 갈 나이에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과 결혼해 남편이 고위공직자가 될 때까지 오로지 9남매 아이들을 키우면서 뒷바라지를 하셨다.
또 퇴직한 남편이 책과 씨름하며 제주의 존경받는 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이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일을 하셨다. 아들 넷에 딸 다섯을 키우면서 장모님은 항상 9남매의 균형과 질서, 조화의 철학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 자신이 개척할 능력이 있는 큰아들과 일본에 유학 간 아들에게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도움을 주시고 셋째와 넷째 아들은 제주에서 훌륭하게 키우셨다.
아울러 딸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살 수 있게 요리와 삶의 지혜를 가르치셨다. 장모님은 나름대로 형제들 간의 우애와 조화로움도 염두에 두신 것 같았다. 큰아들이 훌륭한 공직자로 제주에 근무할 때도 아들에게 해가 될까 봐, 아들 자랑은 아예 입 밖에도 내지 않은 걸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방학 때마다 장모님과 동행할 때면 일은 못하게 하시면서 점심 때가 되면 낭푼밥에 도시락 반찬을 함께 먹는 즐거움을, 또 동문시장 입구에서 둘이 얼굴을 쳐다보며 뜨거운 홍합 국물을 훌훌 불어가며 먹는 재미를 즐기셨던 것 같았다.
그런 장모님은 즐겁게 사시면서도 항상 품위를 잃지 않았다. 대학교수인 내 아내가, 아침저녁으로 어머니가 들르시는 '어머니의 냉장고'라 불리던 동문시장에 함께 장보러 가게 되면 혹시나 딸이 건방지게 보일까 봐 길 가운데로 걷지 못하도록 했던 걸 보면 나름대로 삶의 철학이 확고했던 것 같다.
자녀들이 한창 학교생활을 할 때 학교에서 상의할 일이 생기면 옷을 멋지게 갈아입으시고 학교에 가서 자녀들의 상황을 조리있게 충분히 설명해 자녀의 기를 살려줄 기회로 삼으셨다고 한다. 한 선생님이 '너희 어머니 A여대 나와시냐'하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자기 노력으로 서울에서 고위공직자로 퇴직한 큰아들이 80세가 다 됐음에도 지금까지도 저서를 내며 공부하는 걸 보면 어머니로부터 강인한 DNA를 물려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남편과 아홉자식을 고루 올바르게 잘 키우시느라 점점 나빠져 가는 자신의 아픈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장모님의 말없는 철학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제주의 어머니, 서울의 내 어머니와 말동무하며 오랫동안 살아계셨으면 좋았으련만 두 분 모두 즐거운 생활을 뒤로 한 채, 또 자식이 자라서 부모님께 보답한다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기회를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 특히 가정의 달이자 부모를 생각하는 5월을 맞아 아쉽게도 너무 일찍 돌아가신 제주의 장모님께 이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가시어멍, 살아생전에 폭삭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