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제주 물의 어제와 내일을 잇다…제주 물 백년대계 세운다
「제주 물 100년사」 편찬 본격 제민일보·제주도 공동 사업 물환경, 역사, 개발, 정책 등 제주의 물 이용 역사 집대성 물문화 정체성 정립도 기대
제주의 생명줄이자 도민 삶의 근간이 되어온 '물'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제민일보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제주 물 이용의 기록과 발자취를 집대성한 「제주 물 100년사」 편찬 사업을 올해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제주도가 주관하는 '제주 물 100년사 발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주 물의 개발과 이용, 보전 등 지난 100년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역사적 자산으로 보존하고, 나아가 도민과 대중에게 물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출발했다.
△물, 제주인 삶의 원천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다. 제주의 물은 곧 제주인의 생명이고, 역사다.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지질 구조는 타 지역과는 전혀 다른 물 이용 문화와 생존 전략을 낳았다.
18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는 강수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투수성 높은 토양으로 인해 지표수가 거의 없다. 이 같은 환경에서 제주의 선인들은 우물, 용천수, 봉천수, 심지어 빗물까지 모아 쓰며 물과 함께 삶을 이어갔다. 촘항과 같은 독특한 물 저장시설은 그러한 고난 속에서 피어난 생활문화유산이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본격적인 상수도 개발이 이뤄졌다. 1926년 정방간이수도의 완공을 시작으로, 1957년에는 제주 최초의 근대식 상수도인 금산수원이 문을 열었다.
1960년대부터는 지하수 개발사업이 추진됐고, 1970년대 이후 본격화되며 오늘날 제주도의 물 공급은 대부분 지하수에 의존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는 전국 최초로 지하수 허가제를 도입하고, 유일하게 지하수자원 특별관리구역을 운영하는 등 엄격한 물 관리 체계를 마련해왔다.
이처럼 제주에서의 물 이용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생활, 농경, 문화, 산업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독자적 물 문화는 지금까지도 제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전문가 11명 체계적 집필
제민일보는 「제주 물 100년사」 편찬을 위해 도내 전문가 5인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위원장 이문교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를 발족했다. 이어 '제주 물 100년사 발간 기본구상안'을 확정하고 현재 11명의 집필진이 분야별로 맡아 자료 조사와 집필에 나서고 있다.
이번 책자는 총 4편, 18개 주제로 구성된다. 제주 물의 환경적 특성에서부터 역사 속 이용 방식, 근현대 개발사, 연구·관리의 현황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제1편은 '제주의 물 환경'을 주제로, 제주의 지형과 지질, 강수량, 지하수 분포, 기후변화 등 자연환경적 배경을 조명한다.
제2편은 '역사 속의 제주 물'로, 탐라시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제주의 물 이용 방식과 관련 유물, 민속도구, 옛 문헌 속 기록 등을 종합 정리한다. 고지도나 문헌 속 기후재해 사례까지 함께 다룬다.
제3편은 '제주 물 개발사'로, 1900년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물 개발 흐름을 시기별로 구분해 정리한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현대의 수자원 개발까지를 편년체 형식으로 서술하며, 금산수원, 어승생저수지, 광역상수도 건설 등 주요 수자원 사업이 포함된다.
제4편은 '제주 물 연구와 관리'를 주제로, 수리지질 조사, 지하수 관련 연구, 법제화 과정, 물 관리 조직의 변화, 해외 교류까지를 망라해 제주 수자원 행정의 흐름과 정책 변화를 살핀다.
집필진은 제주의 물 환경과 역사, 개발, 보전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도내외 전문가 11명이 맡았고, 사업단·자문위·편집팀 체계 하에 체계적으로 추진된다.
△집필 과정서 중요 자료 발견
「제주 물 100년사」 발간 과정에서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했던 제주 물의 역사가 이번 편찬 과정에서 하나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도 최초의 공공 상수도 급수 조례라 할 수 있는 '우면 수도 급수 규칙'을 제정하고 공포하기까지의 과정이 처음 밝혀졌고, 서귀포 수력발전소 건설 과정과 제주 지하수 개발 초기 제주와 하와이간 교류의 역사도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제주 물 100년사」는 정방간이수도, 금산수원 등 주요 시설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 지금까지 누락되거나 주목받지 못했던 수자원 개발 역사를 밝혀내고 생생한 현장기록을 역사로 되살려낸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도 크다.
특히 오늘날 '제주도 수도급수 조례'로 이어지는 효시에 해당하는 '우면 수도급수 규칙(右面 水道給水 規則) ' 제정 과정이 담긴 문서 3건이 이번 책 발간을 위한 자료조사 과정에서 최초로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고기원 박사가 국가기록원을 통해 확인한 문서들에 따르면 현재 서귀포시 중심지역에 해당하는 제주도(濟州島) 우면(右面)이 요청해 '우면 수도급수 규칙'이 1932년 공포됐다. 각 문서들에는 민간이 조성했지만 운영상 어려움을 겪던 정방간이수도 시설을 우면이 인수해 1931년 11월 19일 '우면 수도급수 규칙' 신설 및 개정을 신청하고 이듬해 5월 21일 조선총독부가 이를 허가한 과정이 담겨 있다.
해당 규칙의 원형으로 보이는 '우면 간이수도조합 규약'도 함께 발견돼 공공 수도급수 전환과정에서 민간 수도조합의 역할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아울러 당시 수도 공급 방식과 요금 산정 및 징수, 시설 관리, 위반 처분 등 당시의 상수도 정책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정책방향 기초자료 기대
이처럼 「제주 물 100년사」는 미래 수자원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하수 남용, 기후위기, 갈수기 대책 등 제주가 직면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물은 항상 정책과 행정의 핵심 이슈였고, 물의 이용과 보전, 분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장기적인 흐름 속에서 나타난 변화 양상을 기록한 「제주 물 100년사」 편찬으로 정책 결정자에게 입체적인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물 관리 정책의 기반이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더불어 이번 발간은 지역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물지게를 진 어머니들의 뒷모습, 촘항을 만들며 물을 아꼈던 중산간 마을 사람들의 지혜는 단지 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제주의 생존전략이자 문화적 상징이다. 이 책이 도민의 기억 속에 희미해져가던 풍경들을 다시 꺼내고, 청소년들에게는 제주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재가 될 것이다.
아울러 체계화적인 물 이용 역사 기록은 후속 연구를 촉진하고, 새로운 논의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된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더 많은 연구자들이 제주 물을 주제로 한 학술 연구, 문화 연구, 정책 제안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민일보와 제주특별자치도가 공동 추진하는 「제주 물 100년사」는 고난과 극복의 물 역사를 미래 세대가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되살리는 작업이자, 제주의 지속가능한 물 문화와 정책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제주 물 100년사」 집필진(가나다 순)
강만익 박사(제주중앙여고)
강창민 박사(제주연구원)
고기원 박사(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
고은희 교수(제주대학교 지구해양과학과)
김동은 기자(JIBS)
김오진 박사 (제주기후문화연구소장)
문경미 회장(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박준범 박사(주한미육군 극동공병단)
오상학 교수(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이덕희 소장(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
최광용 교수(제주대학교 지리교육과)
△「제주 물 100년사」 발간 자문위원회
이문교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자문위원장)
고기원 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
김동전 제주대학교 교수
박원배 제주연구원 부원장
좌재봉 제주특별자치도 상하수도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