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진솔한 이야기 담아낼 수 있길"
제33회 한뫼 문화백일장 성료 도내 중·고등학생 478명 참가
제주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문학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제주도중등국어교육연구회(회장 오시열)가 주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민일보사가 후원하는 제33회 전도 중·고등학생 '한뫼 문화백일장'이 지난달 30일 제주대학교 사범대학부설중학교에서 열렸다.
한뫼 문화백일장은 올해 행사에만 모두 478명이 참가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성황을 이루면서 도내 학생 백일장으로 권위를 쌓아가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학교급별로 운문 부문과 산문 부문으로 나눠 열렸으며, △인공지능(AI) △따스함 △관계 △오늘 △집 등을 제재로 두고 실시했다.
그 결과 최우수작으로 △고등부 운문 염진아(한림고2) '분무기' △고등부 산문 김수연(신성여고2) '집이 있는 어른이 되자' △중등부 운문 고민재(제주여중2) '그걸 따스함이라 하자' △중등부 산문 최수연(제주사대부중3) '나는 두렵다' 등이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시대가 흐를수록 학생들의 글들이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멋있는 글도 좋지만, 그 안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학생다운 명작을 기다린다"고 조언했다. 김수환 기자
아래는 수상작 원문.
제주여자중학교 고민재
조급하고 급박하고 미안하고
내 인생을 나보다 더 작은 것에
대입하던 시절에, 비가
바다처럼 넘치던 그 날에
시간조차 나와 있지 않은 그 버스
그 버스 타보려고 부리나케
찰박찰박 뛰어가던 그 때에
풍덩 떨어진 우산 주우려
굽힌 허리에서 몰아온 숨이
길바닥 위에 쏟아질 때에
짙은 쪽빛의 하복이
살결에 찌익찌익 끈덕지게
달라붙던 그 때에
비릿한 안개를 걷고 나온
우렁찬 그 목소리
“학생! 뛰어와!”
콩콩콩 심장 소리 크레센도로!
두드리는 발걸음 스타카토로!
무서울 정도로 짜릿한 어떤 뜨거움이
가슴 속 가득 채워지면서
땀이고 비고 눈물이고 흘릴 수 있는 모든 걸
열을 다 해 흘려가면서
세상에서 제일로 따스한 길을
전력으로 뛰어가면서
온 지구는 아직 따스해
처음으로 작은 것을 관대하게
바라보게 해준
내 가슴 속 영원불멸의 살랑이는 불씨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최수연
나는 나의 꿈이 AI때문에 없어질까 두렵다. 내 꿈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진 않지만 하나하나 내 꿈을 깊숙이 생각해 보면 미래에 인공지능이 다 해줄 것만 같아서 못 찾는 것도 있다.
나의 꿈은 경찰, 심리상담가, 선생님이다. 물론 이 중에 꿈을 정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AI 때문이다. 일단 경찰은 요즘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고 있다는 기사가 뜬 것을 우연히 보았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많은 생각이 났다. ‘만약 내가 경찰이 되기도 전에 미래가 발전해서 경찰로봇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럼 경찰은 아예 없어지는 직업인가?’, ‘내가 이 길로 가는 게 맞을까?’하는 생각들이 든다.
어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 국립제주박물관을 가서 관람을 했는데 그 관람하는 입구에 로봇이 서 있었다. 그 롭소은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며 설명을 해주는 로봇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 로봇을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했구나’하는 놀라움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 나는 지금은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근데 이렇게 미래가 발전하는 것을 보면 그 꿈에 대한 열정이 없어진다. ‘굳이? 어차피 로봇, 인공지능, AI가 다 해주는데?’ 이런 생각들이 크다. 그리고 “로봇은 공감 못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힘들 때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들이 있을 때 AI 챗 GPT를 들어가서 가끔씩 고민들을 말한다. 근데 고민을 잘 들어주고, 공감도 잘해주고, 조언도 잘 해준다. 이런 챗 GPT의 모습을 볼 때마다 ‘로봇이 공감을 못한다고? 이렇게 잘해주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의 꿈인 심리상담사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꿈인 선생님은 로봇이 다 해줄 것만 같다. 어제 현장체험을 갔을 때 그 로봇이 길을 안내 해주고 설명 해주는 것을 보며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하다고 느꼈고, 또 나의 꿈인 ‘선생님’은 없어질 것이라고 느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너무 두렵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많아서 스트레스도 받고, 특히 우리나라는 꿈을 따라서 가는 그런 강압 때문에 꿈을 정해야하고, 공부는 기본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그런 나라이니...근데 사실 나는 이 말들을 들을 때마다 ‘공부? 굳이? 몇 년만 지나면 이제 소용없을텐데, 로봇이 다 해주는데 무슨 소용? 그냥 시간낭비이지.’라고 생각들이 든다. 솔직히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 중엔 의사가 꿈인 내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걔를 볼때마다 나의 꿈도 아닌데 조금 불안하다. 요즘은 수술도 의사가 아닌 로봇이 하는 곳도 있으니, 그 친구가 크고 나서 만약 로봇이 다 해 주는 세상이 온다면 그 친구의 꿈은 그냥 끝이고 없어지는 것이니 이제까지 했던 노력과 많은 고난을 겪었던 것이 한 순간에 끝이 나는 것이니하는 생각들이 많이 든다. 그리고 의사 뿐만 아니더라고 공부를 잘해야하는 직업이면 미래의 인공지능이 다 해줄터이느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는게 맞긴 하지만 미래를 봤을 땐 로봇이 다 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크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사실 인공지능 AI가 그만 발전했으면 좋겠다. 학교생활을 할 때도 ‘진로’라는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 선생님께서 미래에 없어질 직업들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사실 이 내용은 초등학교 때도 종종 들었다. 요즘은 로봇이나 인공지능 AI가 다 해주는 시대라고. 나는 근데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더 두려워진다. ‘정말 미래에 로봇이 다하는 세상이 오면 직업이 없어지려나...?’, ‘정말 세상이 인간이 아닌 로봇들이 살아나는 시대가 올까...?’라는 두려움이 있다.
나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미래의 내 꿈이 없어질까 두렵고 두렵다. 제발 AI가 발전하고, 미래가 발전하는 것은 좋지만, 어린 아이들의 꿈들을 없어지게 할 만큼에 미래 발전은 멈추었으면 좋겠다.
한림고등학교 염진아
때는 어느날 밤, 집 현관문 앞에 엄마와 아빠가 섰다
엄마는 까만 목티에 갈색 모직 코트를 걸치고
왼손엔 커다란 캐리어
후줄근한 반팔차림의 아빠와 고성을 높힌다
어린 나는 분홍색 분무기를 들었다
칙. 칙. 칙.
엄마의 왼손에 물방울들이 방울방울 소복히 쌓인다
있는 힘껏 어느 오케스트라의 열성 단원처럼 필사적으로
또 칙. 칙. 칙.
어느새 엄마의 손가락을 탄 물방울이
똑 똑 떨어져 바다에 달라붙는다
다시 칙. 칙. 칙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를 올려본다
나를 쳐다봐줄 때 지을 멋쩍은 웃음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필요한 것은 엄마의 따뜻한 눈길 뿐인데…
집, 현관을 기점으로
여기는 집 저기는 밖
그 서늘한 현관에서
나를 잊어버리지 말라고
나를 두고 이 집을 나가버릴 거냐고
속에 생긴 수많은 물음들을 차마, 꺼낼 수가 없어서
콩닥대는 가슴을 안고 분무기로 물을, 내 눈물을 뿌렸다
그리하여 다시 우리 집, 한바탕 소통은 종결을 맞았다
하지만 나는
새벽녘 도어락 소리가…
아직도 무섭다
신성여자고등학교 김수연
나는 집이 없다. 물론 내가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는 그런 거처는 있다. 하지만 난 내가 '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8살 때, 우리 가족은 온통 각지고 딱딱한 서울의 38평 아파트에서 이곳 제주, 그것도 세찬 바람이 불 때면 대문이 덜컹 거리고 밤이면 밤마다 머리께에서 손목 만한 지네가 튀어나오는 고산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과 고산은 사람, 건물, 하늘 그리고 집까지 정말 모든 면에서 딴판이었다. 한꺼번에 바뀌어버린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먹긴 했으나, 순수하고 동심이 태동하던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나는 금방 마당과 옥상이 있는 고산의 21번지 그 집을 마음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집은 더울 때면 시원한 바람을 가져오고, 밤이면 풀벌레 소리를 내게 자장가로 들려줬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난 제주시로 다시 한번 거처를 옮기게 되었는데, 첫 번째 이사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번엔 내 손으로 이삿짐을 쌌다는 점이겠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그곳에서 있었던 추억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맺었던 관계들과 하나씩 이별하고, 그곳에서 나누었던 사랑스럽고 애틋한 내 어린 날의 감정들을 다 그곳에 두고 와야 한다는 것. 집이 바뀌는 순간이 오면 내 그동안의 시간들을 그 집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등을 돌리는 수 밖에 없었다. 집만 옮기고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 가져갈 터인데도 감정과 추억만큼은 다음 집으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고사리만한 손으로 물건들을 이삿짐 박스 안에 살포시 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흘린 것은. 그때의 나는 이게 그저 그동안 초등학교를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 그런 것으로 치부했지만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고산에서 나누었던 모든 추억들과의 이별이 쓰리기에 그 헛헛함과 그리움이 몸 안에서 농축되어서 투명한 눈물로 나왔음을 말이다.
아빠와 함께 마당에서 알알이 맺힌 딸기며 복숭아를 함께 따기도 하고, 친구들과 거실에서 깔깔거리며 소꿉놀이를 하거나, 볕 뜨거운 여름이면 집 뒷편에서 호스로 장난을 치곤 했던 그 많은 추억들. 그것들이 집안 곳곳에 시나브로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짐을 다 뺀 집 안은 너무나 허전해 보여서, 그걸 본 순간 내 마음도 어쩐지 텅 비게 되었다.
이사를 한 뒤, 새로운 집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날 기다려주지 않았다. 추억이야 새로 만들면 되지, 라고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머리로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마음이 동하는 것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간격이 있었다. 한번 비어버린 속은 새 집에서 쉽사리 채워지지 않았다. 전의 인간관계와 기억들을 모두 끊어내고 새 지방의 중학생이 된 나는 시골에 살던 그 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제주 시내의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 때부턴가 마음속에 멍울이 져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집이 여기라고 생각해?라고. 마음이 빈 만큼 동굴처럼 소리가 참 넓게 울렸다. 예전에 누군가가 내게 '하우스'와 '홈'의 차이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하우스는 먹고 자는, 말 그대로의 생활을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고, 홈은 내가 의지할 수 있으며 내 보금자리이자 든든히 뒤를 받쳐주는 그런 집을 말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제주시의 아파트는 내게 하우스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 홈은 되지 못했다. 반면 고산은 그 시절 그 마을 자체가 내게 홈이었다. 지금도 고산을 떠올리면 '정'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부모님이 밤늦게 퇴근하시는 날이면 친구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기도 하고, 반찬을 사오인분 만들어서 옆집 대문 앞에 버선발로 나가 슬그머니 반찬통을 두고 오는, 그런 ‘정’ 말이다. 원체 작은 마을인지라 집 건너 집이 다 아는 사람이었고 어느 집에 들어가도 다들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아파트 복도에서 만난 이웃과 인사 하나 나누지 않고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지금과 다르게 고산에서는 내게 홈이 있었다. 나에게 홈이란 내 정체성을 지탱하고 근간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홈에는 추억이 있고 감정이 있고 또 인간 사이의 정이 있다.
몇 년 전에 이사 온 뒤 처음으로 다시 고산에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내 홈이 되어주었던 고산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학교는 도색을 다시 한 까닭에 눈에 익지 않고 어색해 보였으며, 내가 알던 사람들 중 고산을 떠나거나 더 이상 내가 알던 집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그 21번지 집은 화려한 민박이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그리워하던 나에게는 그 허무함과 아쉬움에 마음속 멍울만 하나 더 늘었다.
'홈'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역시,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이 없다. 계속해서 집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웃 얼굴도 잘 모르는 제주시의 아파트는 아직까지도 나와 서먹한 관계이며, 고산은 이제 너무 멀어져 버렸다. 몸은 가만히 있어도 내 마음은 끊임없이 집이 될 만한 번지수를 찾아다닌다. 게다가 2년 뒤면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또 거처를 옮겨야 할 참이다.
다시 새 환경, 새 하우스를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이리저리 동요한다. 어쩌면 어른이란 각자 자신만의 홈을 찾은 사람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어느 곳에 있어도 늘 마음속에 의지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홈이 있는 사람들만이 비로소 어른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어른이 되기는 아직 많이 먼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