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로 살기
[책 읽어주는 남자]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현대인의 삶의 운명을 '유목민' 혹은 '유랑자'의 개념으로 표현한다. 들뢰즈는 정주하지 못하는 떠돌이로서의 유목민을 노마드(Nomad)라고 불렀다. 특히 현대 인간은 자유로운 시각을 지니고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로 옮겨 다니면서 낯선 세계와 영역을 끊임없이 넘나들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노마드로서의 삶을 반영하는 노마디즘은 새로운 삶의 영토·방식·가치를 찾아 이동하여 낯선 것을 창조코자 하는 세계관을 반영하면서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등장하였다. 그래서 노마드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세계'로, 21세기를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로 묘사하게 되었다.
원래 유목민은 중앙아시아, 몽골 등의 사막 지대에서 목축을 업으로 삼으며 옮겨 다니는 사람들을 말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일정한 지역에 머물며 사는 정착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목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 생활을 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근대 과학 정신의 발전과 더불어 신인류는 삶의 대안을 다른 차원의 노마드 세계에서 찾아야 했다. 원래 인류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불과 언어와 종교를 고안해냈지만, 현대에 이르러 과거와는 완연하게 다른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주를 거듭하는 삶의 양태의 변화가 노마디즘의 등장을 불가피하게 한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이동, 이주, 여행으로 이루어졌다. 정착민이 농업을 시작하면서 인류 문명의 역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류 생명의 역사는 아메바에서 꽃으로, 말에서 원숭이로 진화하면서 노마드적으로 이루어졌다. 정착민은 자신들이 발명한 국가와 세금, 그리고 징벌과 감옥을 통하여 생존의 체제를 강화해 나갔지만, 인류문명이 이룬 혁신적 발명과 함께 인류의 노마드적 삶의 운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의 대립과 조화의 역사는 인류의 삶과 역사 전반을 관통한다. 세계사를 되돌아보면 어떤 이들은 정착해 있었고 어떤 이들은 떠돌아다녔다. 세계사는 바로 정착과 유랑의 과정을 통하여 구성되었다.
들뢰즈는 '유목'은 공간적인 이동에 국한하지 않고 불모지를 생성의 땅으로 바꿔가는 창조적 행위로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노마드를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이라고 정의하며 현대 철학의 새로운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속도의 시대'로 통칭되는 무한경쟁의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특정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방식임을 밝혔다.
한마디로 유목은 현대인의 필연적인 삶의 패러다임인 동시에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주된 동력이 되었다. 자크 아탈리 같은 사람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는 정주민 중심의 승자의 기록이었던 데 반해 유목민은 언제나 무지와 야만의 표상으로만 등장할 뿐이었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정주의 시기'는 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했고, 인류문명을 이끄는 결정적 실마리는 모두 유목민들의 품에서 나왔다. 그래서 성(城)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생존해 남을 거라고 하였다.
삶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기존의 작가들과 같이 정적인 세계에 머물지 않고 역동적이고 창작적인 문학적 모티브를 가지고 있는 상상력은 다분히 노마디즘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과 우주를 꿈꾸는 작가에게 노마드는 훌륭한 창작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문학에서 노마드는 유목주의로 옮겨가는 노마디즘으로 그 내연과 외연의 확장을 거듭한다. 모든 책읽기와 글쓰기는 기존의 사고와 규범을 벗어나면서 시공을 확장시킨다. 이제 삶과 문학은 다시 출애급의 시대를 맞았다. 떠나는 사람들은 경이의 눈으로 인간의 삶과 문화를 새롭게 보고 사유하는 노마드로 살고 꿈꿀 권리를 찾고자 한다.
이론적 의미에서의 노마디즘에 기대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과 떠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관계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진다. 삶의 행복과 불행도 모두 어찌 보면 끊임없는 만남의 과정에서 그 만남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느냐 그러지 못하였느냐의 차이에 달려 있다.
현대의 노마드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노마드들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방식의 인간형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들은 어딘가에 갇히거나 정주하기를 거부하고 항상 어딘가 미지의 먼 길을 떠나고자 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진정한 노마디즘의 목표는 자본과 기술이 강요하는 획일적인 욕망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