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존을 위해 약자들을 희생하는 공동체
김유정의 제주도 45. 신이 된 어린이
신화, 기쁨보다 슬픈 사연
물신, 현대의 신으로 숭배
공동이라는 이름의 잔혹성
현실을 반영하는 신화
△신의 이름 빌려 우리 지배
신화는 현실을 반영한 우리 선대의 이야기이다. 반영이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염원이 투영된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금방 지나가고 아픔은 오래 남아서 애절한 기억이 된다. 신화에는 기쁨보다는 아물지 못하는 슬픔의 눈물이 흐른다. 신화에서는 신들도 인간처럼 고통을 받는다. 인간으로서 모든 고통을 겪은 후, 혹은 죽음 후에 비로소 신이 돼 희생된 장소에서 신으로 살아간다. 신들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달리 말해서 역사에서 실제로 고난을 받은 대표적인 민중의 표상이 신이다.
또한 신은 자연 상징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신은 자연의 힘이 인격화된 신인동형이기도 하고, 자연물에 영성을 부여해 숭배하기도 한다. 인간과 사물들의 이야기인 '썰(說)'이 신화가 되는 것이다. 신화는 신들의 설화이며, 역사의 대지 위를 휙~ 쓸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스토리텔링이다. 모든 사건의 원인은 현실에 있으며, 당대의 사건을 겪은 당사자, 혹은 그것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영웅심의 발로로 더욱 그럴듯하게 부풀려지는 입담일 것이다. 민중의 사연과 사건으로서의 역사는 신화의 자양분이 된다. 신화는 온갖 상징들로 가득하다. 그것이 생산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감 나지만 허황한 듯하고, 가볍지만 신중하게 된다. 삶이란 자신의 사연이 당사자 이외의 경험할 수 없기에 온갖 추측과 사건 외연의 확장으로 억측과 가설이 난무하게 된다. 남들이 소곤대는 이야기에 대해 옛 속담은 경계심을 가지라고 했다. "떡은 돌릴수록 족아지고(작아지고), 말은 돌릴수록 커진다(물건은 여러 사람의 손을 탈수록 줄어들고 소문은 호기심 때문에 부풀려진다)."
사람들은 세계나 대상을 대할 때 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나를 지키려는 생명의 방어기제 때문이다. 하여 내가 없이는 세계도 없다. 내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내가 관계하는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도 사회적인 결과물인데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물론 현대는 신화의 시대가 아니다. 어쩌면 돈이 현실의 모든 부문에서 위력을 발휘하면서 새로운 신화가 됐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세상에서, 화폐가 상품을 소유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에 화폐, 곧 돈이 지상의 물신이 된 것이다. 우리는 욕망의 노예로써 물신을 따르는 신도들이다. 그로부터 권력과 명예, 품위, 복종이 나오므로, 물신의 신도들은 점점 더 강도 높은 욕망으로 수행하며 절대적으로 그를 추종한다.
신화는 인류의 모든 국가나 시대에서 나타난다. 신화는 늘 변형되거나 생산되므로 사람들의 욕망에서 파생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침략과 전쟁, 탐욕과 약탈, 살인과 자살, 인질과 노예의 세계에서는 시대마다 사상을 낳고 생산의 힘은 욕망을 요구한다. 신화는 인간들의 정체이며. 사회의 그림자이다. 나보다 힘이 세고, 우리보다 강하다고 생각되면 자기 자아가 저항하거나 약하며 지배당한다. 사회는 신의 이름을 빌려 우리를 지배한다.
△신이 된 열 세 살 어린이
약자는 그야말로 힘이 없는 존재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어린이, 여성, 천민, 양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는 제도적으로 신분이 억누르던 사회의 사람들로서 노동력의 착취와 세곡의 수탈을 당하며 때로는 쉽게 희생양이 된다. 민간에서는 약자들이 희생당해 신이 된 사례들이 많다. 어린이와 여성이 그들이다. 수산리 진안할망당은 수산진성을 쌓을 때 어린이를 희생시킨 끔찍한 사례로써 어린이를 돌담 속에 묻는 잔학함을 엿볼 수 있다.
민속학자 진성기 선생 채록본에 의하면, 어린이를 선택한 예언자가 산신 버전(고려시대)과 대사(스님) 버전(수산성을 쌓을 적에) 둘이 있다. 내용인즉슨 "옛날에 왜구들이 자주 쳐들어오니 성을 쌓으려고 했지만, 성담은 쌓아도 쌓아도 계속 무너져 버렸다. 하루는 꿈속에서 산신(대사라고도 함)이 나타나서 열세 살 난 여자 아이를 성담 안의 희생으로 삼으면 성담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주민들은 그 말을 들어 성을 쌓아서 더 이상 무너지는 일이 없었다"
이 신화는 고려 때 한반도 전역에 왜구들이 몰려와 해안가 백성들을 괴롭혔는데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그 왜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세종 때 제주목사 한승순은 장계를 올려서 제주목 김녕, 조천, 도근천, 애월, 명월 등 5개소와 대정현에 차귀, 동해 2개소, 정의현에 서귀, 수산 2개소 등 제주도에 모두 9개 방호소가 설치됐다. 이 수산본향당 본풀이는 수산 방호소의 성을 쌓을 때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세종 때에는 방호소와 진성이 서로 혼용돼 사용하던 때로, 왜구들이 숨어 있다가 갑자기 출몰해 습격하는 바람에 전술상 중요한 지역이었던 우도와 차귀도가 마주한 두 지역(수산방호소, 차귀방호소)에 먼저 성담을 둘렀다.
세종 21년(1439)에 수산방호소에 소속된 군병은 마보병 175명이고, 차귀진은 75명이었다. 이후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수산방호소는 수산성에 있는데 둘레가 1262자이고, 높이는 16자인데 17세기 중반에 사용치 않았던 객사와 군기고를 새로 수리했다.
마라도 본향은 일명 아기업개당이라고도 하다. 열 살 아기를 보는 어린아이를 희생으로 삼은 신화이다. 석주명은 이 신화를 마라도 엘레지라고 표현했다. "허씨 애기는 알뜨르에 사는 이씨 집안의 아기업개인데 이 동네 잠수(해녀) 셋과 함께 마라도 물질을 따라갔다가 오월 장마철에 천막을 치고 잠을 자게 됐는데 하루는 상잠수의 꿈에 산신대왕이 현몽하기를, 열 세살 쳐녀를 두고 가면 네가 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해녀는 선비물가에서 테우에 올라서는 아기업개에게 저기 지성귀(기저귀) 넌 것을 가져오라고 시키고는 아기업개가 간 사이에 급히 테우를 저어 (모슬포로) 떠나오니 그 아기업게가 낮 7일, 밤 7일 만에 굶어서 죽었다. 이듬 해 4월이 돼 (해녀들이) 마라도에 가보니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이에 아미 선관 신도본향 일뤠중저로 들어서니 마라도에서는 이 당을 잘 위하면 몸이 편안했다(진성기 채록본 해석).
△공동체가 행하는 폭력
이들 신화에서는 인신공희가 약자들로 나타나고 있는 데 집단이든 소모임이든 한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경우 공동체는 언제라도 극단적인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다수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폭력 때문에, 그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조직(세력)을 키워서 거기에 대항하는 행동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사실 희생양은 그 집단 내 세력이 없는 사람이 선택되며, 그 희생양으로 어떤 식으로든 항의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처지의 놓인 사람, 구실 붙이기 좋은 이유가 있는 사람 등이 선택된다. 그래서 희생양은 어린이, 여성, 포로, 노예, 죄인, 노약자, 하인이 주가 된다. 희생양의 선택은 초월적 권능을 빌어서 당연한 이념을 만들어 내 정당화된다.
약자로서 어린이들이 자라는 세상은 결코 정상적이지만은 않다. 게랄트 휘터의 말대로, 어린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목적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상이다. 타인을 짓밟아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행위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삶과 공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을 마치 도구나 기계, 가축으로 여기듯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서도 하나도 거리낌이 없다. 문제는 이런 성인들이 겪는 일을 어린이들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