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본성’ 이해하니 냄새 잡고 수익 ‘쑥’

제민일보·제주특별자치도 공동기획 축산악취 갈등 넘어 ‘상생의 길’을 찾다 2. 동물복지 (상)

2025-08-12     고기욱 기자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매일농장’은 휴식공간과 배설공간이 분리됐다. 돼지 한 마리가 배설공간에서 배변하고 있다. 고기욱 기자

쾌적한 축사 구현으로 배변 습성까지 관리
스크래퍼 시스템 가동, ‘묵은 분뇨’ 원천 봉쇄
동물 스트레스 저감, 생산성 향상으로 귀결

축산악취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과 상생 모델을 찾기 위해 지난달 14일부터 16일까지 경기도 일원의 동물복지 선도 사례를 둘러봤다. 이번 방문에서는 단순히 개별 농장을 넘어, 사육부터 도축, 가공, 판매에 이르는 ‘가치사슬(Value Chain)’ 전반에 동물복지 철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했다. 2차례에 걸쳐 악취 저감은 물론 산업 전체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동물복지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동물복지는 돼지의 본성을 존중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곧 깨끗한 축사를 만들고 악취를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증명하고 있다.

△ 동물복지 1번지 ‘매일농장’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매일농장’은 국내 양돈업계를 선도하는 기업 선진의 대표적인 동물복지 회원 비육농장이다.

선진은 1973년 제일종축을 모태로 양돈 사업을 시작했으며,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계열화 사업을 위해 1999년 농업회사법인 ㈜선진한마을을 설립했다.

지난해 기준 연 매출 2400억원, 연간 52만두를 출하하는 규모를 자랑하며, 국내 동물복지 인증 양돈농장 26곳 중 43%가 선진의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을 만큼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선진은 2015년부터 동물복지 인증 프로그램을 시작해 축적된 데이터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형 동물복지의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ICT(정보통신기술) 장비를 적극 도입해 쾌적한 사육환경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며, 가축분뇨 오폐수 정화시스템과 친환경 악취저감 시스템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냄새 없는 양돈장 비결은 ‘돼지 본성’

“돼지는 본능적으로 잠자리와 배변 공간을 분리하는 깨끗한 동물입니다. 하루의 80% 이상을 누워서 보내기 때문에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주면 스스로 불편한 곳을 찾아가 배변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선진 관계자는 악취 저감의 핵심이 돼지의 습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매일농장은 돼지의 본능을 활용한 설계를 통해 악취의 근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돈사 바닥의 일부는 딱딱하게 막아 돼지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나머지는 분뇨가 빠지는 구멍을 만들어 ‘배변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공간 분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온도 관리’다. 돈사가 너무 덥거나 환경이 쾌적하지 않으면 돼지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아무 곳에나 소변을 보게 된다.

암모니아는 주로 소변의 표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배변 공간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면 암모니아 발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선진 관계자는 “온도 관리만 잘해도 암모니아 발생은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매일 청소’와 ‘스트레스 제로’가 핵심

매일농장의 또 다른 비결은 스크래퍼(Scraper)를 이용한 분뇨 처리 시스템이다.

스크래퍼는 돈사 바닥의 분뇨를 매일 자동으로 긁어내 저장조로 옮기는 장치다. 이를 통해 악취의 주원인인 '묵은 똥'이 분해되며 발생하는 복합악취를 원천적으로 줄여준다. 현장 관계자는 “스크래퍼로 분뇨를 매일 치워주면 암모니아는 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깨끗한 환경은 돼지의 건강과 직결된다. 동물복지 농장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물의 5대 자유’ 원칙에 따라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통증·부상·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두려움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이를 위해 꼬리나 이빨을 자르는 관행을 최소화하고, 무료함을 달래줄 ‘바이트볼’과 같은 장난감도 제공한다.

사육 밀도 역시 일반 농장(약 0.8㎡/마리)보다 넓은 최소 1.0㎡ 이상을 보장해 쾌적함을 더한다.

이러한 스트레스 저감 노력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효과를 가져온다. 동물복지 환경에서 자란 돼지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함량이 현저히 낮은 반면,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 함량은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이는 돈육의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육즙 손실(드립로스)이 일반 돼지고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 ‘착한 축산’이 수익으로…생산성 향상

‘동물복지’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생산성을 높여 농가 수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투자’임이 데이터를 통해 확인된다.

실제 매일농장의 경우 동물복지 인증 후 사료요구율(FCR)은 2.80에서 2.62로 개선됐고, 일당증체량(ADG)은 0.792㎏에서 0.879㎏으로 87g이나 향상됐다. 이는 출하일령 단축과 마리당 사료비 절감으로 이어져 농가 수익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 된다.

결국 동물복지를 통해 조성된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이 돼지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이는 폐사율 감소와 성장 속도 향상으로 이어진다.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물복지 투자가 오히려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양돈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고기욱 기자

※ 이 기획은 제주특별자치도청 지원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