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에게서 읽는 달의 고독

2025-09-15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노을 지는 시간의 임진각은 어둠과 붉음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걷는 이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였다. 바람개비 언덕을 넘는데, 낯익으면서 묵직한 설치물이 눈에 들어온다. '통일 부르기' 조형물이라는데,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유 없이 끌려간 이들의 외침이 환청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추석을 앞두고 많은 발길이 이곳 임진각을 찾을 듯하다. 오늘이 마지막임을 에감하며 찾는 이도 있을 테고,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릴 것 같은 두려움에 잔뜩 긴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사람은 명절만이라도 왕래할 수 있는 남북철도가 열리길 기도할 것이다. 이곳으로 7km 너머가 북한이라는데, 어찌 그 선을 넘지 못한단 말인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문태준 시, 「먼 곳」 전문

바람개비 언덕에 서서 먼 곳을 오래 바라보는, 베레모를 쓴 이가 있었다. 카메라를 당겨 그 모습을 찍었으나 그냥 지워버렸다. 먼 곳을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생긴 허공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때문이다. 엉거주춤한 모습이 여든은 훌쩍 넘은 것 같은데 그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두고 온 가족의 바짓가랑이이거나, 말 한마디 섞어보지 못한 이웃집 여학생의 손수건이거나 감나무에 감이 익어가는 가을풍경일 수도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에는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못해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 만이 허공에 떠 있다. 얼른 가서 무릎이 되어주고 싶다. 공중에 꽉 찬 이별의 말이 그의 무릎을 금방이라도 주저앉힐 것만 같다. 

임진각을 찾은 이유는 DMZ 영화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리는 DMZ 영화제는 50개국 143편(장편 88편, 단편 55편)의 국내외 최신 다큐멘터리를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시간만 여유롭다면 일주일 동안 죽치고 앉아서 영화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쉽게도 내가 본 영화는 고작 4편 정도다. 

가장 인상적인 건, 올해 주제가 '우리가 살고 싶은 하루'라는 것이다. 홍보차 출연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자기만의 색깔로 각자가 살고 싶은 하루를 이야기한다. 영화를 통해 대중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하루를 꿈꾸는 감독도 있고,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하루를 꿈꾼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도 후자 쪽에 손을 들었다.  

개막작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4편의 영화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는 '바위를 부수고'(사라 카키, 모하마드레자 에니 감독)이다. 이란 서북부의 외딴 마을, 최초의 의원이자 의장이 된 '사라'라는 여성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첫 장면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첫 장면에서 사라는 낑낑거리며 문을 열고 닫으며 문고리를 고친다. 그녀가 갇힌 세계와 다시 열어젖히고자 하는 세계의 연결고리는 녹이 슬고 아귀가 잘 안 맞는다. 하지만 그 고리를 고치고 연결하는 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사라는 문을 열고 닫는 사소한 일부터 마을의 조혼여성을 구하는 일까지 혼자서 씩씩하게 해낸다. 물론 주변의 비아냥과 무시, 조롱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을의 의원이 되고 의장이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안타깝고 답답한 내용은 여학생들에게 조혼의 위법과 인권침해를 설파하고 조혼강요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으나 대부분이 부모의 강요로 조혼에 승복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다섯 명의 여학생만 남았다. 그들은 사라로부터 오토바이 타는 법부터 배운다. 영화에서 오토바이 타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자유롭게 스스로에 의해 이 세계를 누빌 수 있다는 것. 내 삶의 운전대는 내가 잡는다는 것 말이다. 

영화 제목에 대해 사라감독은 말한다. "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돌과 바위로 가득한 산을 넘는 과정 같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이란 여성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가 생각났다. "나뭇가지들은 긴 손을 들어/ 욕망 가득한 한숨을 내쉰다/알 수 없는 신비로운 신의 명령에/바람은 복종하고/비밀스러운 땅의 삶 속에/ 수천의 숨결들이 숨어 있다"는 '달의 고독' 이라는 시다. 달은 어둠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고 있고, 나뭇가지를 비추고 바람의 복종에 한탄한다. 하지만 포기라는 것은 없다. 조혼을 결정한 여학생의 소식을 들은 사라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녀는 어둠 속에 살아 있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