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검사로 치매 예측, ‘돌봄’에서 ‘관리’로 전환

돌봄 공백과 가족의 희생 의료와 제도 불균형 여전 “새로운 패러다임 요구”

2025-09-28     고기욱 기자

치매를 혈액검사로 조기에 예측하고,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약물로 관리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는 치매를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돌봐야 하는 병이 아닌,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보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혁신적 도약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을 지원할 사회 시스템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시급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주광역치매센터는 지난 26일 제주노동자종합복지관에서 ‘치매의 미래를 말하다: 패러다임 전환과 대응’을 주제로 개소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의료 혁신’과 ‘사회 시스템’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해소하는 것이 미래 치매 관리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발표에서 전문가들은 과거 기억력 저하와 같은 임상 증상에 의존하던 진단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제는 아밀로이드 PET 스캔이나 p-tau217 등 혈액 바이오마커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생물학적으로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준혁 제주광역치매센터장은 증상이 없는 57세 남성이 혈액검사만으로 병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항아밀로이드 치료’를 시작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변화를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것은 질병의 진행을 27% 늦추는 레카네맙(레켐비)과 같은 ‘질병 수정 치료제’다.

하지만 홍삼남 제주의료원 부속요양병원 신경과장은 이를 두고 “지금 단계에서는 ‘치매 치료의 혁신적 전환’이라기보다 혁신으로 가는 시작 정도, 첫걸음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용과 뇌부종(ARIA) 등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이 여전히 큰 장벽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료 발전은 더 많은 환자들이 증상이 경미한 초기 단계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기존의 시설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예고한다.

하지만 현재도 지역사회 거주 치매 환자 가족의 45.7%가 돌봄에 큰 부담을 느끼는 등 시스템은 이미 한계에 부딪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서정주 한국에자이 커뮤니케이션&사회혁신 이사는 “치매를 극복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상태, 그리고 치매여도 괜찮은 사회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치매인과 가족이 안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치매 카페’와 같은 사회적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 가족 대표 강영숙 씨는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하게 천천히 늙어가는 삶이 우리 사회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