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이라는 이름에 대한 문화상징적인 의미
김유정의 제주도 58. 역사비평
일상은 이념이 가득한 상징세계
4·3은 주체없는 역사적인 정명
역사 용어 의미 다시 살펴봐야
△우리를 둘러싼 상징의 세계
4·3사건을 생각하면 문득 1980년대 도내에서 회자했던 사(死)·삶(生)이라는 담론이 생각난다. 한창 다시 4·3진실을 찾으려는 기운이 싹을 트던,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었던 4·3 당시의 제주도민을 상징했던 말이다.
우리의 삶은 상징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일상에선 자신의 이름, 별명, 심벌마크, 단체, 깃발, 색깔, 상호 등 상징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신화, 역사, 현실 세계는 수많은 상징과 같이 있어서 기호 또한 상징과 매우 유사하게 얽혀 있다.
그렇다면 상징(Symbol)이란 무엇일까. 라틴어에서는 징표(徵表)라는 의미의 '시그눔(signum)'과 표상이라는 의미로 '피구라(figura)' 등이 있고, 그리스어의 어원을 보면, '심벌린(symballein)'의 동사형으로 '조립하다' '짜 맞추다'라는 뜻을 가지며, 명사형은 '심벌론(symbolon)'으로 '부호(符號), 표시(標示), 증표(證票)'라는 뜻을 가진다.
상징의 사전적 의미로는 닮아서, 또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면서 그것의 의미를 갖게 되는 그림·암호·기호·문자·자연의 동물과 식물, 사람이나 기물(器物) 같은 것들을 지칭한다. 사실상 자연계 전체 사물이나 그것들의 행위를 보고 인간이 부여하는 표현의 산물이 상징이다.
스위스의 의사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의 말대로 "징표 없이는 어떤 것도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제 안에 있는 것에 표시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자기 밖으로 나오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나 자연의 사물은 안과 밖이 분리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우리의 몸만 봐도 안은 오장육부의 장기가 있고 밖은 피부가 외부의 기후와 만나 안팎의 몸을 유지하며 한 몸이 돼 살아간다. 결국 정신마저 하나의 몸으로써 이 안팎의 동시적 구조가 된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그래서 파라켈수스는 "외부의 것 중에 내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한다.
우리는 징표를 통해서 각 사물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상 이 표시(標示, signatura)는 현상이나 기호, 말로써 감춰진 것을 모조리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과학인 것이다.
단어 '死·삶'이나 숫자 '4·3'이라는 문자적인 표시는 기표와 기의를 갖는다. 눈에 보이는 기호로써 기표(記標:시니피앙, signifiant)'와 그리고 그 단어의 의미를 나타내는 '죽음'과 '살아있음'이라는 기의(記意, 시니피에:signifie)는 어떤 사실에 대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된다. '死·삶'은 1980년대에 4·3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으로 사용했다. 사실 상징은 매우 뭉뚱그려진 말이기 때문에 그것에 더욱 정교하게 다가서기 위한 장치로, 소쉬르는 기호학을 상징과 기호가 유사하지만, 그 차이를 구별하고자 사용했다. 그러나 '死·삶'에는 4·3처럼 주어와 목적어가 없이 현상만 있어서 또한 모호하다.
△4·3의 역사적 성격
4·3의 상징으로 한때 불렀던 사(死)·삶(生)은 삶을 광기로 짓밟았던 죽음의 공포, 즉 학살의 상태를 상징한 말이다. 4(사)·삼(삶)은 안과 밖 차이처럼 쉽게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시대라서 어제의 삶이, 오늘의 주검이 되고, 또 오늘의 삶마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죽음의 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이 상징적 표현도 그냥 숫자 4·3으로 부르면 4·3사건의 역사적 표현은 애매하다. 4·3민중항쟁과 같은 상징처럼, 4·3에 어떤 성격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그 역사는 무엇이었는가.
역사로서의 4·3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라는 과제는 역사의 진실을 바르게 알려고 하는 일이다. 즉, 언어는 이데올로기 산물이어서 한 사회의 성격, 주체, 사실성, 사건의 본말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 언어 속에 그것을 부르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 이해관계가 숨어있음으로써 오늘날까지 4·3의 성격에 대해서 대립적이다.
현재 4·3의 역사적 성격 문제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커다란 정치적 실책과 곧바로 이어진 전쟁과 분단이라는 상황 때문에 생긴 이념의 때가 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 견해를 당당하게 밝힐 수 없는 소신 없음도 한몫했다. 사실 '4·3'이라는 말을 외국어로 번역하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기존에 나온 말로에는 4·3폭동, 4·3민중항쟁, 4·3사태, 4·3사건, 4·3투쟁 등에는 역사적 성격이 명확하다. 최근 필자가 찾은 박중림 망사비에서는 '戊子四三事變(무자43사변)'이라 했고(1961년 세움), 한국섭 묘비에서는 '戊子動亂事件(무자동란사건)'이라고 했다(1966년 세움). 이 비석들이 만들어진 시기가 1960년대 초중반이어서 한국전쟁(6·25사변, 6·25동란이라고도 부름)의 기억이 가시지 않은 시기로, 또한 5·16 군사쿠데타 독재 정권기여서 사변이라거나 동란이라는 말이 더 시대 상황에 부합하게 보인다.
그리고 4·3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에는 '폭도(暴徒), 빨갱이, 무장대, 산사람, 산군(山軍) 등이 있다. 여기서 특히 산군은 『탐라기년(耽羅紀年)』을 쓴 심재 김석익(金錫翼)의 매우 독특한 표현으로 민간인이 산으로 가서 자발적인 군대가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역사 용어들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폭동' 치안 상태를 어지럽게 하는 집단적인 폭력 행위. '사태' 어떤 일이 벌어진 상황. '사건'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드러난 일. '민중항쟁' 세상 일반의 민인들이 스스로 부당하게 탄압하는 상대에게 대항해 전투를 하거나 전쟁을 치름. '투쟁' 국가, 집단, 개인, 계급사이에서 권력과 지위를 둘러싸고 다툼을 보이는 대립 관계. '동란' 난리·폭동·반란·전쟁 따위가 나서 세상이 질서 없이 소란해지는 일. '동란 사건' 난리·폭동·반란·전쟁이 일어나서 사회가 아주 무질서하게 어지러운 상황 등이다. 그리고 4·3사건과 관련한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의 용어들이 있다.
'폭도' 방향성 없이 군중심리에 휩쓸려 폭동을 일으켰거나, 또는 폭동에 가담한 자들의 무리. '빨갱이' 공산주의자를 가리키는 말. 무장대:저항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총기로 무장한 부대나 대열. '산사람' 환난을 피해 일시적으로 산으로 간 민간인. '산군' 어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민간인 스스로 산으로 도피해 조직한 군대. 라는 역사 용어들이 있다.
△4·3사건에 대한 자기검열과 피해의식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4·3사건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온 섬사람들이 관련됐으니 누가 그것을 피할 수 있었을까. 연좌제에서부터 피해자 가족이 대부분이고, 사상적인 낙인까지 세대를 타고 제사 속에서 전승되고 있다. 올래 걸러 4·3사건에 피해를 보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여태껏 정립된 용어가 없다. 앞서 보았듯이 이해 당사자마다 용어를 달리 부르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역사에서 원인과 결과, 시대적인 상황을 볼 때 제주도민들은 정치적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수난사적인 측면과 저항사적인 측면 모두에서 원인과 결과를 따져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인 특수성 속에서 민족주의적인 상황을 참작한다면 4·3민중항쟁이라는 말이 큰틀로서 전체적인 타당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