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섬은 온통 그리움과 기다림, 고독이 낳은 숙명"

2025-10-23     송민식 기자

섬 둘러싼 외로움 정서 시어로 담다
고성기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1987년 시집 「가을 단상」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고성기 시조시인이 여섯번째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를 펴냈다.

섬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희망과 꿈과 현실의 극복과 아울러 삶의 생기로서의 제주 바다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제주라는 섬, 제주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거센 풍랑을 떠오르게 하는 파도는 고성기 시인이 제주에서 '숨'처럼 기댄 순백의 시조와 섬의 문학을 생성하게 한 터전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섬은 내가 낳고 자라서 결국 묻힐 곳이다. 내가 섬이다. 내가 낳은 시들도 섬이 돼 여기 묻힐 것이다. 섬은 온통 그리움과 기다림이니 고독과 단절이 낳은 숙명이다. 그리움도 기다리다 잦아지면 짜다"고 전한다. 

이번 시집은 섬을 둘러싼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시어로 담아냈다. 80여편의 시를 '섬은 왜 짤까', '먼지까지 고운 사람', '바람 따라 가는 꽃', '말보다 깊은 언어', '웃음이 더 곱구나', '절반 비운 반달처럼' 등 총 6부로 나눠 실었다.

해설을 쓴 전해수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조집에 대해 "섬을 둘러싼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는 이번 신작 시조에도 잘 드러난다. 섬은 외로움을 견뎌내고 그리움으로 다시 명명된다"며 "다만, 이제는 누군가를 기다리던 섬이 한 세대를 통과해 딸과 사위를 기다리는 섬으로 공간이 증폭된 점에서 유장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섬의 그리움과 기다림의 미학이 이번 신작 시조의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섬처럼 고독하게 사는 인간의 마음이 그저 모두 섬이라는 것을 시인은 그의 시조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고 평했다. 

한편, 고성기 시인은 1950년 제주시 한림읍에서 태어났으며, 제주제일고와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74년부터 제주여자학원에서 국어교사를 거쳐 2013년 제주여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시인은 제주문인협회, 제주시조시인협회, 한수풀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운앤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동백예술문학상, 제주특별자치도 예술인상, 제주문학상, 북한강문학상 대상, 황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섬 문학이 궁금하고 섬의 문학적 상상력을 엿보고 싶다면 고성기 시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림과책. 1만2000원. 


사라져 가는 말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제주어
현택훈 「제주어 마음사전2」

사라져 가는 언어는 곧 사라져 가는 삶의 기억이다. 걷는사람 에세이 29번째 도서로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사전2」가 출간됐다. 

언어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곧 '살아 있는 제주'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책이다. 2019년에 출간된 「제주어 마음사전」의 두 번째 책으로,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제주어를 온몸으로 흡수해 온 현택훈 작가는 이번 책에서 다시 한번 제주어를 통해 기억과 삶, 자연과 역사를 불러낸다.

이 책은 단순한 후속편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미래를 향해 이어가려는 시인의 의지다. 제주어는 지역 방언을 넘어, 곧 한 세대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형식을 빌려 쓰였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이고, 한 편의 이야기다. 제주어 낱말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을 좇다 보면 제주의 마을과 들판, 바람과 파도,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언어와 삶은 서로의 거울처럼 이어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주어는 곧 제주 사람들의 역사이자 삶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4·3 당시의 비극적 장소와 잃어버린 마을을 노래하는 시편들, 해녀와 농부, 아이와 노인들의 언어 속에서 제주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땅을 살아 낸 사람들의 발자취라는 점을 시인은 제주어로 증명한다.

작가는 "제주어 사전을 펼쳐 낱말을 보다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또 아주 생소한 낱말을 만나면 그 낱말을 좇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단순히 언어 기록집이 아니다. 한 시인이 평생 몸에 밴 언어로 삶과 사람, 자연과 죽음을 사유하는 제주의 문화적 지도이며, 동시에 사라져가는 언어를 후대에 전하려는 뜨거운 기록이다. 

해녀들이 물속 깊이 들어가 전복과 소라를 캐오듯, 그는 언어의 심연으로 들어가 제주의 옛말을 캐내고, 그것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언어의 힘, 언어가 지켜 낸 삶의 무늬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단단하고 따뜻한 사전이 될 것이다. 걷는사람.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