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天葬)

[책 읽어주는 남자]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

2025-11-10     허상문 문학평론가·영남대 명예교수

라싸의 푸른 하늘은 산 중턱에 무심히 걸려 있었다. 하늘 저 멀리 독수리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간다. 독수리의 자유로운 모습은 흡사 억압과 구속에 얽매이던 누군가의 영혼이 환생하여 날아다니는 듯하다.  

티베트는 인간 생존의 기본 요소인 산소마저도 모자라는 척박하고 험난한 곳이다. 해발 3700미터가 되는 라싸 공항에 내리면 벌써 숨이 헉헉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의 오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티베트는 세계와 일정한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신비의 땅으로 존재해 왔다. 

티베트 사람들은 티베트가 '죽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죽기 좋은 곳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태고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그리 표현한 것일까. 그래서인지 티베트 사람들은 현생의 삶보다는 후생과 죽음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현세에서 더 잘 살기 위해 일신의 행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인간은 결국 죽고 만다. 삼라만상은 무상하고 인간의 육신도 죽고 나면 하늘의 구름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지만, 죽음은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늘 죽음을 두려워한다. 눈앞의 행복을 추구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티베트 사람들은 "죽음은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 

지금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음에 임하는 방법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더욱 가치를 두며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을 낯선 여행객은 이해하기 힘들다. 티베트 각지에서 모여들어 비 내리는 새벽 조캉 사원의 광장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절로 든다.

비록 물질적 혜택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한 티베트 사람들이지만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우주만큼 넓고 깊다.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자연환경이 열악하고 물적 토대가 빈약하지만,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고난의 땅에서 자연과 함께하면서 초월적 정신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역설적이다. 

죽음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도 자연과 우주와 함께 있다. 이들이 죽은 후에 행하는 장례의 풍습인 토장土葬, 탑장塔葬, 수장水葬, 천장天葬은 모두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의식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례는 새들의 먹이가 된 채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천장天葬(티베트 사람들은 조장鳥葬이라고도 부른다)이다. 척박한 고원에서 화장하기 위한 나무도 귀하고, 메마른 땅을 파기도 힘들어 새들에게 시신을 맡기는 천장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천장이 이루어지는 천장터는 생명의 끝이자 또 다른 출발의 장소이다. 공포와 환희, 파멸과 생성이 함께하는 가운데 생사윤회의 법칙으로 이 지상의 모든 것이 평등하게 심판되는 곳이다. 부서지고 가루가 된 육신의조각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통로, 그곳이 바로 천장터이다. 천장사는 인간 백정이 아니다. 껍질에 불과한 인간의 육체는 천장터에서 칼로 다듬고 정성스럽게 해부되어 독수리에게 아낌없이 보시되고, 천장사에 의해 영혼은 땅에서 하늘로 다른 세상으로 인도된다. 

이 기막힌 죽음의 의식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두렵고 무서웠다. 육신이 하나의 덩어리로 부서지고 갈라지는 시간에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열망하고 집착해야 할 무엇도, 그렇게 부정되고 찬미 되어야 할 무엇도 아니었다. 

나는 먼발치에서 이를 악물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대체 삶에서 육신은 무엇이고 영혼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육체와 영혼은 어떻게 만났다가 떠나가고 결별하는가. 아무리 참아도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척박한 고원 환경에서 먹이 부족에 시달리는 독수리에게 시체를 보시하는 티베트인들의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이 놀랍고, 독수리를 통해 죽은 육신의 영혼을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승천의 의미는 더욱 놀라웠다. 

아귀다툼하는 자본과 과학기술의 현장에서 날아온 '문명인'의 마음은 내내 괴로웠다. 독수리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켜 달라는 간절함을 담은 천장 의식을 바라보는 것은 성스러운 혹은 비루한 삶과 죽음의 끝자락을 보는 일이었다. 뼈가 갈라지고 살이 헤어지는 처참한 눈앞의 현실 앞에서 몸과 마음은 안개 속에서처럼 서로 다른 길을 헤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