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포럼] 노인일자리, 제주가 선도한다
정성중 비상임논설위원·전 중등교장
만추의 찬 바람은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알린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 사회도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아울러 일자리 참여를 희망하는 시니어들도 급증하고 있다. 이제 내년 노인일자리 참여자를 모집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필자는 평소 많은 어르신을 만나 일자리 상담을 한다. 그 대화 속에는 외로운 표정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삶의 고충이 많은 듯하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인가요"라고 조심스레 말하는 분들도 있다.
노인 문제는 특정 세대의 과제가 아니다. 모두가 마주할 미래이며 함께 풀어가야 할 사회적 숙제다. 그런 점에서 노년층의 일은 경제활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자리는 사회를 향한 발걸음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며 스스로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수단이다.
이를 반영해 정부는 내년 노인일자리를 올해보다 5만여 개 늘어난 115만 개로 확대하고, 지역연계형·사회역량형·디지털형 등으로 질을 개선한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런 변화는 도내에서 더욱 뚜렷하다. 내년 제주 노인일자리 예산은 872억 원, 참여 인원은 1만 7475명으로 늘어나 인구 대비 일자리 규모는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돈다. 무엇보다 관광·문화·환경 등 지역특화 사업을 속속 선보이고 있어서 주목을 받는다.
우선 제주시니어클럽 에너지지킴이 사업이다. 제주에너지공사 CFI에너지미래관에 시니어 도슨트는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 등을 안내하고, 어린이 대상 에너지 인형극도 있다. 그래서 이번 노인역량활용 선도모델 평가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느영나영복지공동체 공항안전 불법드론 감시단은 제주공항 주변 비행금지 구역을 순찰하면서 불법드론을 신고하고, 관광객과 주민을 대상으로 계도 활동도 병행해 공항안전에 기여했다. 정부도 내년에 전국 확산 모델로 검토할 만큼 실효성이 인정됐다.
서귀포시니어클럽 드론 순찰대 사업은 드론 자격을 취득한 시니어가 산불예방, 해안가 점검, 불법행위 감시 등을 수행하는 전문형 일자리다. 실제 생명을 구한 사례도 알려지며 언론에 화제가 됐다.
JDC 이음일자리는 청년과 어르신이 오름과 곶자왈 환경정비에 참여하는 세대 융합형 사업이다. 세대 간 교류와 지역 환경 개선을 이루며, 제주다운 사회적 가치를 확장했다.
성산읍 시흥리 복합나눔센터는 취약계층을 위해 이불 세탁과 배달 서비스를 운영해 돌봄을 지원한다. 주민들이 직접 노인일자리를 만든 전국 최초 지역 기반 모델이다.
이처럼 도내에서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와 어르신들의 역량을 연결해 지역특화 일자리를 운영한 결과, 다양한 선도모델이 탄생했다.
그러나 일자리 상담을 하다 보면 일자리는 늘었지만, 여전히 참여하지 못하는 시니어들이 많다. 경험과 재능을 되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더 확충될 필요가 있다. 노인일자리는 단순한 생계수단보다, 사회적 고립을 완화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중요한 공간이다.
새해에는 어르신들이 외로움에 머무르지 않고, 일하는 행복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래서 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도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제주에서 선도하는 노인일자리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한 해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