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한 그리움의 무게

2025-11-24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11월의 끝자락에 걸린 나뭇잎이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붉어지고 있다. 가을이 짧아진 탓에 나무들도 바짝 긴장했을 터다. 일조량에 의해 낙엽의 색깔도 언제 붉어질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요즘 같으면 참 헷갈리겠다. 그래도 비가 오면서 바짝 추워지는가 싶더니 금세 잊고 사나흘 햇살이 적당해서 나들이 또는 행사를 치르기엔 여한 없는 날씨다. 낙엽 다 지기 전에 나뭇잎 좋은 시절을 오래 눈에 담고 싶을 뿐이다. 노랑이나 빨강이나 초록이나 다 고운 색이지만 아직은 푸르름이 더 좋은 나이인가 싶다. 아니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나이를 붙잡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풍요와 삶의 무게의
비대칭 속 가을은
즙 틀에 외로움과 그리움을
짜낸 진액의
사랑 한 잔을 그립게 한다
 
못다 핀 꽃도 피지 못할 꽃도
희락의 삶은 된서리에 고갤 숙일
운명이라는 것도 모른 채
늦가을에 애를 끊일 것이다

비밀의 문을 닫아 둔 시간 속에
못다 핀 꽃도 피지 못할 꽃도
가을의 깊이에 숨겨진
사랑과 애환의 비밀을 알기까지

생로병사의 진액이
낙엽 된 까닭을 알기까지
만추의 심오한 비밀은
바람의 날개 짓에 검버섯 핀
낙엽의 얼굴을
 -김수열 시 「가을 낙엽의 비밀」 전문

낙엽 한 장에도 삶의 풍요와 가난의 무게가 함께 숨어 있고, 희락의 햇살과 된서리가 결결이 숨어 있단다. 시인은 낙엽의 정체는 '생로병사의 진액'이라 하고 있으니 낙엽을 진하게 우려 마시면 그만큼의 사유도 깊어질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하기야 뼛조각 하나에도 별이 숨어 있다니, 낙엽 한 장에도 무수한 별이 부서진 조각들이 빚어낸 비밀이 숨어 있을 터이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져서 한 밤이 깊어지도록 따뜻할 수 있었다.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영화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Nostalgia for the Light)'는 칠레의 3000m 고도 아타카마 사막에 모여든 천문학자와 피노체트 독재정권 하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천문학자와 유족, 무슨 상관인가 싶다. 당연히 천문학자들은 별을 관찰하기 위해서일 테고, 유족들은 왜 그곳을 찾는 것일까? '아르필레리스타'라는 이름의 유족 모임에 속한 여자들은 사막의 흙을 파내며 사라진 가족들을 찾는다. 독재정권 하에서 처형돼 사막에 버려진 이들. 그들의 뼈는 조각으로 남아 별처럼 땅 속에서 흩어지고 있을 터이다. 

 "모든 게 순환의 일부라 생각해요. 내가 시작도 끝도 아니고 부모님이나 내 아이들도 그렇다고. 모두가 한 흐름의 일부라 생각해요. 어떤 에너지가 재생되는 거죠. 별도 죽음을 맞기 마련이죠. 그렇게 다른 별과 행성과 새 생명이 태어나요.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에게 생긴 일과 그 부재를 다른 차원으로 받아들여요"(파트리시오 구스만, 2010)

영화는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하지 않은 현실을 에너지의 순환이라는 구조로 기억을 불러온다. 관측기를 통해 우주의 별을 관찰하는 것처럼 땅 속의 뼈를 관찰할 수 있다면, 거기 아직 남아 있다고 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은 아마 지금도 그 사막을 찾고 있을 것이다. 별과 뼈는 근원이 동일한 하나의 이미지며, 생명이며 기억인 것이다.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영화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보며 이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삽 한자루를 들고 아타카마 사막을 50년 이상 찾은 그들의 발걸음이 어떻게 하면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내가 그 당사자는 아니지만 나도 함께 그 발걸음의 무게에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게 관여 또는 연대라는 이름의 발걸음이라면 기꺼이, 내가 있는 곳에서 삽을 들어야 하리라. 나는 삽을 들고 무엇을 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