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 문서 품은 독일 연방기록원…‘통합 관리’가 기록 보존 해법

세계기록유산 제주4·3…‘기억의 집’을 짓다 <3> 독일 연방기록원

2025-11-25     고기욱 기자

나치·동독 등 격동의 역사 기록물 통합 보존

‘슈타지’ 비밀문서 이관…단일 기관서 책임 관리

연방기록물법 제정…접근과 보호 법적 기준 마련

2021년부터 슈타지 기록물 편입…관리 일원화

독일 연방기록원 로비. 독일=고기욱 기자

독일 베를린 리히터펠데에는 붉은 벽돌의 독일 연방기록원(Bundesarchiv) 본원이 웅장하게 서있다. 1952년 설립된 이곳은 나치 시대부터 분단, 통일에 이르는 독일 근현대사의 모든 기억을 품고 있다. 연방 정부의 행정 문서는 물론, 동독 국가보안부 ‘슈타지(Stasi)’가 남긴 111㎞ 분량의 방대한 감시 기록까지 아우른다. 독일은 국가폭력의 증거를 묻지 않고 통합 관리함으로써 기록 보존의 제도적 기틀을 완성했다. 제주 4·3기록관 건립을 앞두고 독일의 ‘통합 관리 시스템’과 ‘법적 기준’이 4·3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흩어진 기록, 하나로

독일 기록 관리의 특징은 ‘통합’이다. 연방기록원은 연방 정부의 기록물뿐만 아니라, 동독 국가보안부(슈타지) 기록물까지 품었다. 연방기록원에 따르면 별도 기관이었던 ‘슈타지 문서 보관소(BStU)’의 기록물 관리 책임이 2021년 6월 연방기록원으로 공식 이관됐다.

이에 따라 연방기록원은 일반 행정 기록물뿐만 아니라 동독 국가보안부의 기록물까지 통합해 관리하고 있다. 실제 기록원 내부에는 슈타지가 작성한 ‘작전 개인 기록(OPK)’과 타자기 활자 분석 자료 등 감시와 통제의 증거들이 원본 그대로 보존돼 있다. 4·3 관련 기록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제주에게, 이를 한곳으로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독일의 운영 모델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연방기록원에 전시된 국가기록물. 독일=고기욱 기자

△명확한 법적 기준

독일은 연방기록물법(Bundesarchivgesetz)을 통해 기록물의 접근과 보호에 대한 기준을 마련했다. 현장에 전시된 법률 설명은 1988년 제정된 이 법이 기록물의 ‘법적 안정성’을 확보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법률에 따라 원칙적으로 기록물은 생산 후 30년이 지나면 일반에 공개된다. 다만 개인 정보가 포함된 기록물은 해당 인물 사망 후 30년(사망 시점 불분명시 출생 후 110년)까지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기록의 보존과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알 권리’와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기준을 법률로 명문화해 운영하고 있는 사례다.

연방기록원은 피해자의 아픔과 가해자의 기록을 동시에 보존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나치 친위대(SS) 중령 오토 스코르체니의 인사 기록과 나치 당원들의 신상 카드가 보존돼 있다. 이는 전후 탈나치화(Entnazifizierung) 과정에서 증거로 활용된 자료들이다.

반면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름을 기록한 희생자 명부도 함께 전시돼 있다. 단순히 숫자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17만명이 넘는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찾아 책자로, 또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남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화 집중

연방기록원이 소장한 문서의 길이를 합치면 540㎞에 달한다. 이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이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기 위해 독일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매년 약 2000만건의 자료가 디지털화돼 온라인으로 제공된다. 1500만장의 사진, 16만편의 영화 필름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도 포함된다.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역사적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4·3기록관 건립 단계에서 디지털 아카이빙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고기욱 기자

※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작성했습니다.

기록은 과거와 현재 잇는 다리…국민이 직접 역사 형성

[인터뷰]엘마 크라머 독일 연방기록원 대변인

“연방 기록원은 기록물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을 지향하며, 사용자들이 독일 역사에 대해 상세하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시각을 형성하도록 초대합니다.”

엘마 크라머(Elmar Kramer) 연방기록원 대변인은 연방기록원의 사명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기록물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다리(Bridges)라고 설명하며, 기록원이 우리가 역사를 더 잘 이해하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크라머 대변인은 기록물 보존의 원칙에 대해 “역사와 현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영속적인 가치(lasting value)가 있는지, 그리고 시민의 정당한 이익(legitimate interests)을 보호하거나 입법, 행정, 사법에서 역할을 하는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방기록원은 연방 정부의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고 제공할 법적 의무를 지닌 고위 연방 기관”이라며 “소장 자료에는 1495년 신성로마제국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문서를 포함해 모든 자료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open access)을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미래 목표에 대해서는 “연방기록원은 ‘사회의 기억(memory of society)’으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 왔다”며 “가장 최근에는 구 동독 국가보안부(Stasi)의 기록물 관리를 인계받아 통합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2000만건 이상의 디지털화를 통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고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