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도심 속 추모공간' 콘텐츠·접근성 둘 다잡았다

세계기록유산 제주4·3…'기억의 집'을 짓다 <4>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베를린 시내 설치된 추모공원…일상 속 자리잡은 역사 시민들의 휴식 공간 물론 친숙함 속 학습의 장으로 활용 가감 없는 자국 기록물 기록·전시…살아있는 교과서 평가

2025-11-25     윤승빈 기자

독일의 수도 베를린 도심 속을 걷다보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여 있는 야외 공원을 마주하게 된다. 공원으로 들어가면 일일이 세는 것은 벅찰 정도로 많은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각각의 구조물은 비석처럼 보이면서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얼핏 보면 장례에 쓰이는 관처럼 보인다. 수천개의 구조물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베를린 시민들에게는 이미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다. 제주도가 제주4·3기록관 건립을 앞둔 가운데, 본보는 도심 속 추모공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찾아 독일 국민들이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을 담아왔다.

△가감없는 생생한 기록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이름 그대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홀로코스트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 주도로 자행된 대규모 유대인 학살을 말한다. 

2005년 5월 12일 1만9073㎡에 달하는 부지에 콘크리트 구조물 2711개가 설치됐다. 구조물 하나하나가 두께 약 1m, 너비 2m 상당으로 거대하게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이 구조물을 비석으로 부른다. 또 누군가는 이 구조물을 관이라 부른다.

어느 독일 가족의 할머니와 손자는 비석 사이사이를 걸으며 산책했다. 연인들은 공원 인근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학생들은 교사가 들려주는 그날의 비극을 공책에 열심히 적어나갔다. 출근을 하던 한 시민은 미리 준비한 꽃 한송이를 품에서 꺼내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올려 놓고 짧게 묵념했다. 

공원 지하로 내려가면 홀로코스트에 관한 정보 센터가 마련돼 있다. 

공간 입구에는 "이것은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니 다시 일어날 수 있다"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이후 사진과 함께 1930년대 나치당 집권부터 1940년대 학살이 일어나기까지의 일대기가 나열돼 있다.

이 역사를 공부하고 나면 학살을 증언하는 각종 기록물들을 다양한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 

독일은 국가폭력이 자행된 자국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뚜렷하게 기록해 후대에 남겼다. 이에 국민들은 이 공간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리는 한편, 자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한다.  

이런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에는 특히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도심 속에 위치해 보다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한몫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독일 국민들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기록관이자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부른다.

 

△기록관 접근성 관건
제주4·3 역시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 말한다. 각종 진상규명을 통해 명백한 한국사 비극임을 인정받았다. 

제주4·3기록물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최종 등재하는 쾌거를 얻기도 했다.

이에 제주도는 후속 조치로 제주4·3 기록물의 보존·전시를 위한 제주4·3기록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기록관 건립에 앞서 '어디에 건립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하나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록관이 들어서는 위치로 4·3평화공원 신축건물 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의회 등에서는 도심 속 공간에 추모·전시·기록의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대진 의원(동홍동)은 "접근성이 좋아야 제주도민과 제주를 찾는 관광객, 외국인 등이 더 많이 보고 4·3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며 "제주 4·3평화공원은 사실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3이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있는 관덕정이나 그 주변에 4·3기록관을 만들어야 한다"며 "4·3의 전국화와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주변에서 발생한 '3·1절 발포사건' 등 역사적 사실을 기념관 건립에 참고하자는 취지다. 

국내 사례에는 5·18 기록관이 있다. 광주는 중심지인 금남로에 기록관을 만들어 시민 뿐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이에 제주4·3기록관 역시 5·18기록관을 비롯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사례를 참조해볼 수 있다.

제주4·3기록관 건립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4·3의 역사가 제주도민을 넘어 전국민, 전세계인의 기억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처럼 콘텐츠 활용도를 높이고, 야외 광장을 활용하는 등 접근성을 보다 높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