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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주말을 맞아 집 가까이 대섬 산책을 한다. 붉은 태왁이 해처럼 둥둥 떠다닌다. 물질하는 해녀는 1분여 동안을 물속 깊이 들어갔다가 "호이" 숨비소리를 내며 물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가만 지켜보고 있자니 그 호흡이 내게로 전해져 숨가쁘다. 저렇게 몇 번을 반복해야 하루 일과가 끝날 것인지. 상상만 해도 힘겹다. 그래도 채취할 그 무엇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물건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숨을 고르며 다시 들어가 보아도 손에 들고 나오는 것이 별로 없다. 물질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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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4.1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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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걸어 놓은 수평선을 접었지접힌 자국마다 그늘진 절벽이 되는데수직의 몸들이경사면으로 기울어 쏟아지는 사람들점선 안으로 돌이 날아오고펼쳐진 사람들은 자국이 남고짧은 봄날이 여러번 겹치면깨진 꽃잎에도종종 몸을 부딪치는다친 사람들이닫힌 사람들이말없이 모서리에 닿아 있어너무 투명해 뼈가 다 비치는점선 밖을걷는 사람들은 뒤돌아보겠지숨죽이지 않고도 멀리 와버린 검은 하늘을붙잡지도 못했는데끌어안지도 못했는데들쭉날쭉 모여 있다가접힌 채로 뒤척이는 사람들접고 나면 흐릿해지는 사람들한번 달아나지도 못하고한번 일어서지도 못하고깃털 같이 쌓여가다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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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4.0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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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꽃이 피면 봄이다. 입 모양이 노루 귀를 닮아 노루귀라 한다는데, 암만 봐도 노루 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참에 노루의 귀를 확인하러 수목원이나 관음사 뒤편으로 가봐야 할까 보다. 노루귀 꽃말은 '인내', '신뢰' '믿음'이라고 한다. 꽃말까지 찾아볼 정도니 어디라도 기대고 싶은 불안이 있나 보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랫말 가사가 내 카톡사진에 담긴 사진들과 그것들이 지닌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당신의 사진은 왜 꽃인가요/예쁜 꽃인 건가요/젊은날 꽃다운 날이 문득 그리운가요"(손태진 노래, '당신의 카톡사진') 내가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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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3.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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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다. 절기상으로는 봄의 시작이다. 벚꽃이 예년에 비해 조금 일찍 만개한다는 소식이 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잦은 비날씨로 예측을 벗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러나저러나 시간은 흐르고 있고, 다들 봄이라며 새롭게 마음 단장을 하고 있다.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기분인 것이다. 산에 나무는 눈발을 발에 묻히고 서 있다. 계곡물에도 살얼음이 끼었다. 무언가를 틔우기엔 조심스러운 날씨다. 하지만 인근 야산에서 냉이를 캐왔다는 이웃이 있는 걸 보면 온갖 생명들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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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3.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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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다 잠시 쉬면서 얼굴에 붙은 모래알갱이를 털어낸다. 앞산을 집어삼킬 태세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파도 너머의 화려한 집들은 미세먼지에 싸여 흐릿하다. 집과 산과 바다가 안개 속에서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설명절을 맞아 관광지는 북적대지만 '집에 남아 있는 개나 고양이들은 독거노인처럼 외로울 것이다'는 생각을 할 때, 줄에 묶인 개 한 마리가 헥헥거리며 산을 내려간다. 그 뒤를 따르는 주인은 연신 지적질이다. "이월아, 이월아, 거기로 가면 안돼". 이월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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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2.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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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벙글어 비를 물고 서 있다. 입춘한파를 예상하고 있던 잦은 겨울비가 심상치 않다. 기후위기 여파가 이상기온과 더불어 잦은 비를 몰고 있는 듯한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저러나 꽃은 피고, 설명절은 다가오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가게에서는 가게 주인이 고장난 전기난로 한 면을 켜놓고 덜덜 떨고 있었다. 날로를 바꾸려니 봄이 오는 것 같고, 쓸데없는 낭비인 것 만 같아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경기가 어려워요?"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 그냥 웃기만 했다. 속으로는 "그러니까 선거가 중요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누가 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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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2.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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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 뒷길을 몇 번 돌았다옛집 찾으려다 다다른 막다른 길골목은 왜 막다르기만 한 것일까골과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아엉거주춤 나는 길 안에 섰다골을 넘어가고 싶은 목을 넘어가고 싶은 골목이담장 너머 높은 집들을 올려다본다올려다볼 것은 저게 아닌데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낮은 지붕들이 중얼거린다나는 잠시 골목 끝에 서서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오래된 친구 오래된 나무 오래된 미래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나무가 미래일까오래된 몸이 막다른 골목 같아오래된 나무 아래 오래 앉아본다세상의 나무들 모두 無憂樹 같아그 자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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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1.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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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더니 창밖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구름을 뚫고 천사가 하늘로 직행하는 듯한 형상이라고나 할까.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그 이미지는 흐려지고 말았지만 잔상은 남아 있다. 새해를 맞아 천사들도 신년회로 바쁠 것이라는 농담도 곁들여가면서 새해 덕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덕담의 일순위는 언제나 "건강하자"이다. 예전에는 형식적인 인사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현실적인 삶의 주제라는 것이 연초에도 쉼없이 들려오는 부고 소식이 이를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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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4.01.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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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 한 가지를 손꼽으라면 극영화 한 편 만들어보는 일을 함께 한 것이다. 재능이랄 것도 없는 아마추어 수준의 카메라기술과 편집, 연기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며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매사 즐거웠다기 보다는 긴장되고, 당황스럽고, 어리벙벙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군소리 없이 주어진 시간을 수용하며 함께 창작의 기쁨을 맛보았다는 게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바쁜 와중에 무슨 일을 또 벌렸냐며 부러움 반 시샘 반의 눈길도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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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12.1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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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마당 한 켠에 별의별 꽃과 나무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앵두나무, 사과나무, 감나무는 나뭇잎을 다 떨구어내 겨울맞이를 하고 있다. 상추는 씨를 받으려는지 대가 올라오도록 놔두고 있고, 배추는 잎이 벌어져 노끈으로 친친 감아 있다. 파는 잦은 비에도 잘 자라고 있고, 시금치와 유채는 아직 땅바닥 가까이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같은 계절인데도 텃밭식구들이 사는 모양은 다 다르다. 사람들만 같아지려고 애를 쓴다. 며칠 무리했는지 밤새 몸살을 앓았다. 어머니는 파뿌리를 끓여 마시라고 자꾸 권한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뼈마디가 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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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12.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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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왔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배달되었다. 그 옛날 우물가 같은 수돗가 에 살얼음이 얼어 새들도 왔다가 돌아간 모양이다. 새들이 부리를 쪼려다 어리둥절하는 풍경을 떠올리니 잠시 미소가 흐른다. 사람이 참 얄궂다. 아침마다 목축이던 물가가 얼어버렸으니 새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난처하겠는가.고요하지만 실상은 살얼음을 걷는 시초를 다투는 긴박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집안에 돌봄이 필요한 이가 있으면 으레 겪게 되는 긴장감이다. 사회적 자아로서의 삶은 변함이 없는데, 개인적 신상 또는 가족의 상황에 변수가 생기면 무엇을 내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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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11.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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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사포 같은 가을이 와서슥슥 내 감각을 갈아놓고 갔다사포의 표면이 억센 만큼갈린 면에 보풀이 일었다그 보풀이 가랭이를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에스닥일 때마다몸속에서 쇳소리가 났다내가 서걱거리면몸속에 든 쇠종이 윙윙거렸다몸이 통째로 울림통이 되고사지를 벗어난 소리가 먼 산 나무를 흔드는11월갈린 감각에 날이 서길 기다리며마을 어귀에 오래 서 있었다(김남극 시, 「11월」 전문)잎사귀를 다 떨구어낸 산딸나무가 11월처럼 서 있다. 예수가 못 박힌 나무도 산딸나무라던데 두 팔 벌린 형상이 그를 연상케 한다. 헐벗은 산딸나무는 비록 검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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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11.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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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암 들어 백팔 배를 드리는 어머니백여덟 번째 이마를 바닥에 대고머리 위로 내던졌다가 뒤집은 손바닥에는 희고 검은 잔금들이패였다한 생 내내 얻었던 것 다 잃고수심 깊은 주름살만 거머쥐고 상경한 노모다삐걱거리는 무릎관절과 휜 팔꿈치와 바람에 닳은 이마까지먼지 나는 일대기를 온몸으로 받들어 올린 다음에도꿇고 엎드린 어머니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저러다가, 저렇게, 깊은 잠드는가 싶다어머니 손바닥 깊게 파인 도랑 사이로고요한 것이 흐른다흥건하다손끝을 타고 흐르는 저 무진한 물길주악비천도의 젖은 치맛자락이 문지방을 넘는다풍경을 치고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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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10.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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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감이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몇방울 열린 감은 잦은 비와 바람에 떨어져 버리고 빈가지만 가을하늘에 걸려 있다. 감나무의 잔가지와 잎사귀를 지지대 삼아 거미가 집을 지었다. 상하좌우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거미는 아침나절 내내 제집을 층층이 올린다. 제 이름의 방 한 칸 갖기도 힘든 세상에 다행스럽게도 거미는 무상으로 집을 짓고 있으니 그 또한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다만, 바람과 구름이, 누군가의 높은 키가 무심하게 손을 내젓지 말길 바랄 뿐이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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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10.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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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등불의 세상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허수경 시, 「정든 병」 전문)비바람이 잠시 멎은 후 하늘은 갈기갈기 찢어진 바다의 조각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은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언제 떠날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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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09.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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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 앉은 외할머니께서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했다늙으면 죽어야죠!외할머니 지당한 말씀에 맞장구쳤다그날 저녁 외할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고나는 이유도 모른 채어머니의 부지깽이를 피해 마루 밑에 숨었다외할머니의 지당한 말씀에 대한 대꾸가빨간 불꽃이 살아 있는부지깽이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그날 저녁 호박죽 한 그릇을 다 드시고도입맛이 없다는 외할머니에게한 그릇 더 드시라는 어머니의 말씀을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창수 시 「호박죽」 전문) 학교 밖 담벼락에 늙은 호박이 낮달처럼 걸려 있다. 불순한 생각이지만 저 늙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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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09.0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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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봉 산지등대 전시실에서 의미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중석 작가의 '큰불때기' 사진 전시회다. 우연히 찾은 등대에서 반가운 작가도 보고, 사진 전시도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큰불때기'는 옹기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미학적으로 해석하고 형상화한 사진 전시다. "제주옹기는 도공장(그릇), 질대장(흙), 굴대장(가마), 불대장)불때기) 등 네 개의 파트가 분업화 되어 상호유기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작업이다"이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 그 여정 가운데 불때기는 질그릇을 마무리하는 장엄한 행위라는 것이다. '클불때기' 전시는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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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08.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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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리와 종달리 그 경계에서 갑작스런 장대비가 쏟아져 놀란 적 있다. 정확한 지점은 특정할 수 없으나 아마 그쯤일 거라 기억하고 있다. 한 지역 안에서도 날씨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던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런 특별한 순간이 요즘 따라 잦다는 게 심상치 않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은, "지각장마가 숭신 숭시다"는 말이다. 늦은 장마가 큰일을 낼 것만 같은 불안감이 밀려든다는 뜻이다.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은 지각장마가 큰비를 불러올 것은 이미 예상됐던 바이다. 엘리뇨 현상 등 세계적인 이상 기후 현상이 제주를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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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08.0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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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산맥을 지나 홉스굴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하고 길다. 산의 심장을 관통하는 길을 택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마주치는 차가 한대라도 보이면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갑기만 하다. 민둥산, 돌산이 끝없이 이어지다 초록빛이 간간이 보이다 시박하면 어김없이 말과 소, 양과 염소들을 풀을 뜯고 있다. 이 많은 동물들을 누가 어떻게 관리하는지 신통방통 하기만 하다. 멀리서 말을 타고 혹은 오토바이를 탄 채 동물들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동물들은 차가 나타나도 꿈쩍도 않고 있다 거의 몸 가까이 와서야 놀란 척 길을 비켜준다. 어미의 젖을 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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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07.2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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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장마는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느닷없는 천둥번개로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마른장마가 이어지고, 먹구름이 밀려와 이제 시원한 빗줄기 쏟아지려나 하다 보면 가는 비만 몇 모금 흩뿌리다 간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쏟아내는 빗물은 어딘가에서 심각히 굴절되고 있는 지구의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에게만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게도 트라우마는 겹겹이 쌓여가고 있을 게 뻔하다. 그나마 곶자왈의 한기가 정수리 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손이 자꾸 어깨로, 머리로 가면 스트레스 지수가 꽤 높다는 뜻이다. 피가 어딘가에 몰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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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2023.07.10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