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나는 열이 많아’라든지‘이 나이에 벌써 수족 냉증에 배가 차고 몸이 시려 큰일 났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래서 냉한 사람은 조심해서 생활하지만 열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할 것 없이 차게 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 여긴다. 그러나 아직은 차게 해도 견딘다는 말이지 좋은 게 아니다. 맥주를 몇 년 먹다 보면 결국은 설사가 나서 못 먹기도 하며, 전에는 팥빙수를 즐겨 먹다가 이제는 배가 아파 못 먹는다는 사람도 흔하지 않은가.

보통 사람은 열도 없고 몸이 차지도 않다. 사람은 살아 있는 이상 피가 돌아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 피가 잘 돌아야 된다. 죽은 사람은 피가 없어서가 아니라 피는 있어도 피를 돌리는 기운이 없는 것이다. 피를 돌리고 혈관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이것이 기운이다.

이 기운을 생명력이라고 하자. 우리 몸이 찬 공기나 찬 음식을 만나면 피의 활동이 덜되고 기능이 위축된다. 이 때 우리 생명력은 차가워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생명력은 모든 조직에 기운과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본디 임무이므로 조만간 복구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가령 겨울에 차가운 물로 설거지를 하면 그 당시는 손이 시리나 설거지가 끝나면 오히려 손이 후끈후끈거리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막힌 조직에 가서 염증을 내고 열을 내어 원상 복구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열은 할 수 없이 열을 내는 것이지 처음에 차가운 것이 침입하지 않았든지, 또 침입했어도 체력이 튼튼했으면 열이 날 리가 없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일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생명력인 이 기운은 이와 같은 힘든 작업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지치고 시들어져서 나중에는 정상적인 혈액순환도 힘들어지고 각 조직의 활동도 약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냉한 체질 열이 많은 체질이 꼭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할 게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보는 게 좋다. 즉 열이 많게 느껴지는 사람은 이제 기운이 점점 지쳐 가는 신호이고, 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기운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표시이니 원기 부족의 정도 차인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열도 나지 않고 차가워지지도 않는 것이니 이 모두가 원기 부족이 아니겠는가.

<황학수·한방의·제민일보 한방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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