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5여년간 법조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했다. 순진한 남성과 여성이 억울하게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순진한 남성은 영악한‘꽃뱀’에게 당하기 쉽다. 꽃뱀은‘이러시면 안돼요’하는 정도의 약간의 저항을 한다. 저항 아닌 저항의 과정에 옷 단추가 떨어지거나, 조금 긁힌 상처 같지 않은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순진한 남성은 실질적인 거부로 생각하지 않고 강행한다. 그런데 성폭행으로 고소가 된 이후에는 약간의 저항이 극도의 공포로 묘사되고, 말짱한데도 진단서까지 제출되기도 하며, 남성의 힘이 과대 포장되어, 연약한 여성으로서 어쩔 수 없이 당한 것으로 조서가 꾸며진다. 순진한 남성은 조서 내용이 황당하지만,‘저항함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은 사실이다. 꽃뱀의 진술이 왜곡, 과장됐다고 주장해 보지만 먹혀들지 않는다. 꽃뱀인지 순진한 남성인지에 관하여 얼굴에 씌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를 밝히기도 어렵다. 무죄판결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고, 무죄가 된다 하여도 오랜 기간 구속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통상 순진한 남성으로서는 거액의 돈을 주고 꽃뱀과 합의할 수밖에 없다.

순진한 여성과, 이 세상 여성들을 모두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하는 무례한‘늑대’사이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다. 순진한 여성은 우락부락한 늑대가 험한 인상 한번만 써도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히고 당황하며, 온 몸이 얼어붙어 옴짝달싹도 못한다. 너무나 무서워서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우악스러운 힘 앞에 꼼짝없이 당한다. 순진한 여성은 세상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고소하지도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삶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고소한다고 한들, 때린 것도 아니고, 저항다운 저항도 못하였으므로, 그 뻔뻔한 늑대가 처벌을 받을 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돈을 노리고 고소한 꽃뱀이 아닌가 의심을 받기도 한다. 신문지상에 꽃뱀으로 묘사되어 기사까지 실리는 경우도 있다. 신문기사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실제보다 과장, 왜곡된다.

다소 극단적인 예이지만 실제로 가능한 일이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 항상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수사관과 판관이 현명한 것은 사실이나, 신은 아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진실을 철저히 밝혀줄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순진한 남성들이여 한번쯤 꽃뱀이 아닌가 의심해 보자. 순진한 여성들이여‘남자는 다 늑대’로 돌변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고성효·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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