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 제정 후 정부지원금 거부…"행정심판 준비"

   
 
  ▲ 하루 21원의 치료비를 거부한 고윤진씨. 제주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4·3후유장애 아카이브전에서 자신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김대생 기자>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조천읍 북촌리 고윤진씨(65). 그의 주요 이동수단은 작은 오토바이다. 두 바퀴가 아닌 네 바퀴다. 다리의 총상으로 인해 두 바퀴로는 평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 씨는 이 오토바이를 끌고 제주시 병원까지 치료받으러 셀 수도 없이 다녔다고 했다.

오토바이가 필요 없을 때면 한 손은 항상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한여름에도 마찬가지다. 거드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이 손으로 다리를 지탱해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처지다.

그의 삶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고작 북촌초등학교 2학년이던 9살 때. 4·3 당시 ‘북촌대학살’이라는 광기의 역사를 자신의 의지로는 피해 갈 수 없었다.

누나 둘을 토벌대의 총칼 앞에 잃었고 어머니 역시 총상을 입어 고통을 겪다 사망했다. 그 역시 등과 오른쪽 다리에 심한 총상을 입었다.

19살이 다돼서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상처가 컸지만 세월을 묵묵하게 이겨내며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고씨.

그러나 그의 넉살좋은 얼굴을 요즘에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정부의 4·3 후유장애인 선정에 따라 날아 든 ‘잘난’ 공문서 때문이란다. 공문서에 명시된 평생 의료지원금은 7만2000원.

“앞으로 10년을 더 산다면 한 달에 650원을 지원해주겠다는 소리 아니냐. 차라리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공문이었다면 50 여 년 간 살아왔듯이 그냥 넘어 갈 수 있었을 것을 …”
실제 고씨의 평생 의료지원금을 일일 지원액으로 환산하면 21원 가량이다. 반면 병원진료비 6500원을 포함해 그가 하루에 치료를 위해 쓰는 돈은 대략 1만원 정도. 누구라도 정부에 감사하다며 선뜻 동의해 줄 수 없는 대목인 셈이다.

이런 후유장애인 의료비 지원 문제는 고씨로만 끝나지 않고 있다. 후유장애인으로 인정돼 지급되는 최대 의료지원금은 912만원이다. 기대수명이 10년이라면 1년에 91만2000원이 된다. 한 달 평균 7만6000원이라는 계산이다.

의료비 지원 결정이 난 78명 중 사실상 거동을 할 수 없어 1600∼1800만원 정도의 개호비와 내년부터 월 33만원 정도 지급되는 4명의 후유장애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당사자들로서는 선뜻 동의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결국 고씨는 4·3 특별법이 제정된 후 처음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의료지원금을 거절하기로 했다. 이미 온라인으로 입금시키지 말라고 제주도에다 알렸다. 또 현행 4·3특별법상 ‘재심’(再審)이 이뤄질 수 없는 만큼 행정심판을 제기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행정자치부 4·3사건처리지원단에 문의한 결과 당초 지정병원에서 책정했다고 하는 ‘치료비 추정서’가 없었다는 답변을 듣고서 이런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했다.

치료비 추정서는 사실조사서, 병원진단서와 함께 후유장애인 심사과정의 주요 자료 중 하나였다.

고씨는 “정부가 얼마 얼마씩 돈으로 환산해 주기보다는 치료나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지정병원을 확대해주는 편이 장애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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