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에게 너무 슬픈 일이 있어요.

무슨 일인데?

어제 저녁에 우리 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너무 많이 아파서 엄마도 아빠도 걱정을 많아 하셨어요.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동생이 빨리 나아야 할텐데. 그렇지?

오늘부터 엄마, 아빠 말씀도 잘 듣고 동생한테도 잘 해 대해 줄 거예요..

그래 우리 주연이 참 착하구나!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좇아와 어제의 슬픈 일을 말하는 주연이.

이렇게 봉개초등학교 1학년 고우네반의 하루는 시작된다.

어제 치킨을 먹었어요, 엄마가 새 옷을 사주셨어요, 일요일에 가족들이 밭에 가서 상추를 심었어요, 매미가 번데기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등등 병아리 같은 그네들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가정뉴스가 보도된다.

입학식 날에 보이던 순진함과 해맑음은 4개월 여간의 학교 생활과 익숙함이라는 무기(?)로 약간 시든 듯 하지만 아직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이들이다.

자신의 이름을 겨우 쓰던 아이들이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편지를 썼을 때, 수학책의 쪽수를 몰라 “으앙”하고 울음보를 터트리던 지은이가 스스로 수학책을 펼쳐들고 자랑스러운 듯 공부를 할 때 ‘가르치는 맛’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 맛의 깊이를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올해로 교육 경력 6년째에 접어들고 있는 나에게 맡겨진 32명의 아이들.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아홉 살이지만 여덟 살 동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는 살인미소 동석이, 선천성 면역 결핍증으로 어린 나이에 힘든 주사를 맞고 지내지만 언제나 밝고 씩씩한 태영이, 만 5세로 또래들보다 어리지만 똑똑하고 야무진 유나, 그리고 개성이 강한 나머지 29명의 고우네반 아이들.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 없다 라고 했던가?.

유빈이가 수연이네 집에 갔다가 개에 물려 응급실에 실려간 일, 하은이가 영희네 동네에서 놀다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진 일, 현장 학습에서 외국인을 만나 신기해 한 일,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하다 ‘실례(?)’한 일, 50여명의 선생님들을 모셔 놓고 공개 수업을 한 일, 고우네반 선생님이 종이 자르다가 손을 다쳐 병원에 간 일 등 4개월 동안 웃고 우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생겨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까?

틱낫한의 「화(Anger)」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보면 ‘물을 골라서 주기’라는 말이 나온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화의 씨앗에 오랫동안 물을 자주 뿌리면 쉽게 화를 내는 사람으로 된다고 하였다. 요즘 고우네반에서는 마음속에 있는 좋은 씨앗에 물을 주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서 좋은 점을 골라 물을 주는 것인데 벌써 몇 명에게서는 꽃이 핀 것 같다. 1학년이 끝날 때 즈음이면 우리반 모두의 마음과 얼굴에서 환한 꽃이 피어났으면 한다.

학교 오기가 즐거운 교사, 학교 가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숨을 헐떡이며 뛰어와 반가이 인사하며 웃는 아이들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보물이 아닐까 싶다.<고민정·봉개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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