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close

제민일보

사이드바 열기
HOME 문화생활 종합
[허영선 문화칼럼] 비룡스님과 '선행'
제민일보
입력 2000-05-23 (화) 16:30:04 | 승인 2000-05-23 (화) 16:30:04 | 최종수정 (화)
 평생을 용맹정진 자기 수행에 힘쓰며 살았던 한라산 천왕사의 비룡스님을 살아서 잘 알지 못했다.지난 1월 입적하기 전까지는.

 이북이 고향인 그가 이미 50년대초 한라산에 와 천왕사를 창건했다는 것,그가 그 유명한 고승들이 수덕을 쌓던 금강산 마하연에서 정진했다는 것.출가하기 이전의 직업은 서기였다는 것을 알 뿐이다.

당대의 고승 한암스님의 법문을 듣고 금강경에 매료됐다는 것. 오대산 상원사에서 부목과 허드렛일을 했다는 것. 한암스님의 청빈한 수행자세를 따라 한라산 솔잎을 갈아먹었다는 것을 알 뿐이다.멀리 개성에서 한라산까지 찾아온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도 수행에만 정진하고 정진했다는 것. 타고난 체질과 생식덕인지 세속의 일백년을 꼬박 살고 갔다는 것을 알 뿐이다.

 30년전 얼마 전 산불이 난 서귀포 섶섬에서 홀로 3개월동안이나 수행을 했다. 비룡스님을 기억하는 이들은 스님의 기이할 만큼 혹독했던 육신의 수행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다. 그의 필생의 화두는 수행이었다. 70년대엔 종이옷을 입고 관덕정 경찰서앞을 지나며 공부하라고 외치다 잡혀간 일화도 있다 한다.

계율이 바로서야 종단이 바로 설 것이라고 강조한 그는 수염을 기른 이유도 부끄러워서이고 종단만 바로되고 스님들이 스님노릇 제대로 하면 바로 깎아버릴 것이라고 했다한다. 자리펴는 것보다 앉아서 잠을 자는 장좌불와가 더 편하다며 그대로 실행했으며 수행하는 풍토가 해이하고 계를 지키는 정신도 약해졌다고 질타했다. 수행하는 이들에게 무소유야 이를 말인가.

 6·25가 일어난지도 모르고 보길도 토굴에서 수행정진하던 시절 강도가 들어 쌀가마를 훔쳐가자, “이사람아 반찬값도 가지고 가야지 하며 반찬값도 꺼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공부하라 ,공부하라, 중이 공부 안하면 큰 죄 짓는다. 공부하지 않으면 쌀 한톨이라도 먹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수행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수행과 깨달음은 자성의 근원을 체득하는 일이요.본질로 돌아가는 일이다.그리고 자기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얽매임에서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

정휴스님은 최근에 낸 「적멸의 즐거움」에서 앞서간 고승들이 적멸의 순간을 어떻게 맞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그동안 나는 밖을 향해 달렸을 뿐 내면을 살피는 일에 게을리 했다.마치 내 자신을 낯선 거리에다 팽개쳐 버리고 빈 껍데기만 가지고 살아온 셈이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오로지 수행과 본체를 드러내는 일에 정진하는 스님이 이럴진대. 세속의 인간들이야 더 뭐라 할 것인가.

 오로지 수행과 깨침의 자세로 해탈의 정서를 표현하던 고승들은 궁극에는 열반송을 통해 찰나의 감동을 남겼다.불국사 조실을 지냈던 월산 큰스님의 <한 평생을 돌고 돌아/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았네/본래 그 자리/그것은 천지 이전에 있었네> 임종게나. 성철스님의 <일생동안 남녀 무리들을 속여서/ 그 죄업이 하늘을 넘치네/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가지나 되는지라/한덩이 붉은 해는 푸른 산에 걸려 있네>는 유명하다.

한평생 수행의 삶을 살았으나 한평생 사람들을 속였다는 자기 고백적 이 열반송 역시 얼마나 울림이 큰가. 비룡스님의 열반송은 <흰구름이 오듯 더불어 와서 밝은 달이 가듯 따라가네/한 주인이 가고 옴이/필경 도인의 삶이라>였다.

 한시라도 잠잠하면 불안해 지는 것이 세상사인가. 평화와 들끓음이 혼돈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뉴스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우리는 하루를 보낸다.요즘 로비스트 사건이 정국을 흔들고 있다.물론 모든 로비는 돈이 온간다.뉴스의 대부분은 돈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다.

그러한 경제가치를 이따금 열반송 하나가 뜨끔하게 찌른다. 새천년에 처음맞는 부처님오신날을 보냈다.인터넷의 대단한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세상, 바쁜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만든 인터넷은 인간들을 그 앞에 불러앉힘으로써 정보의 쾌락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이 있어 점점 고독해지는 사람들이 있으며,인터넷이 있어 더욱 풍요로와진 사람들이 생긴다.이러한 공간은 무릇 수행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들여다 볼 시간을 너무 주지 않는다.

수행의 극치까지 가려던 스님의 있었다. 그 참뜻은 알 수 없다. 공부는 곧 자기 수행이며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닦으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 연후에야 적멸의 순간 진실한 열반송이 나오는 것일까.<편집부국장 대우 문화부장>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게임 2007-06-30 03:58:14

    게임방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스릴넘치는 카지노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대박찬스 바로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제민일보 네이버에서 본다"

    도내 일간지 유일 뉴스스탠드 시행

    My뉴스 설정방법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