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국 정치의 비극은 지도자들의 식언과 이를 용납한 국민들에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쿠데타의 주역들은 한결같이 국민들에게 사기를 쳤다. 그들의 공통점은 쿠데타를 일으킨 목적이 '결코 정권을 잡을 욕심에서 나온 게 아니라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들은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종국엔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고 쿠데타는 정권탈취의 수단이었음이 증명 됐다. 그 순서는 군사반란 뒤 비상기구 설치, 정당 창당을 한 뒤 대통령에 취임이었다.

즉 '5.16'의 주역 박정희 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 공화당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 '12.12'의 주역 전두환 소장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와 민정당을 창당한 뒤 마찬가지로 대권을 장악했다. 그 뒤 박 대통령은 18년동안 철권통치를 휘두르다 '부마항쟁'과 10.26사태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전 대통령은 '5.18광주항쟁'을 총칼로 밟아 정권을 장악한 뒤 독재를 하다 '6월항쟁'이란 시민과 학생들의 엄청난 희생을 치른 뒤에야 말로를 맞았다. 둘 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탈취'를 위해 식언을 했다는 게 나중에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앞줄에 섰던 자민련 인사들이 '국민의 정부'에서도 줄줄이 국무총리 자리에 앉고 있다. 한 사람은 30년 전에 3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가 정권창출을 한 '공동여당'의 몫으로 다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3공화국 때 인사인 한 사람은 국무총리로 발탁됐다가 '부동산 명의신탁'파문과 도덕성 시비로 4개월만에 옷을 벗었다. 이번에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서리는 5공화국 때 정치에 입문, 여당의 핵심적인 자리를 두루 거쳤다. 특히 그는 지난 4.13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과 공조를 파기해 야당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조하겠다면서 말을 바꾸고 있다.

한국엔 국무총리를 할 만한 도덕성과 참신성을 갖춘 능력 있는 인사는 없는 것일까. 국민들에게 식언을 하지 않고 실망과 배신감을 주는 총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하주홍·코리아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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