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서리 임명으로 사실상 부활된 '디제이피 공조'가 정치권에 급류를 몰고 오는 가운데, 제주도민들에게도 혼란스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한동 총리서리는 다름 아닌 자민련 총재였고, 자민련은 그가 총재로 있던 지난 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4·3 특별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철승 자유민주민족의 대표 등 우익인사 15명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4·3특별법 위헌소원'에 대해 자민련이 이를 전폭 지지하고 나섰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현실과 학계의 움직임은 위헌소원 지지를 취소하도록 압박하는 분위기를 국내외에서 자아내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전쟁 50돌을 맞아 전쟁 당시 양민 학살을 규명하려는 움직임과 게릴라전을 보는 눈을 바꾸기 위한 기초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전쟁을 일으켰고, 당시 미소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역학관계는 어땠는지 등에 관한 것보다 한국전쟁을 몸소 체험한 남북한 양민의 처절한 모습을 양민을 주체로 부각시키는 전쟁 연구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한동 총리서리가 지난 총선 전에 자민련 총재로서 당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제주 4·3은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며, 그렇기 때문에 4·3 특별법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은 결국 그 동안의 연구가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목을 매왔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이런 현실 역시 '자료 탓'이라고 정부기록보존소의 실무책임자는 지적한다.

결국 양민이 직접 겪은 생생한 자료들이 밖으로 나와 모여야만 살아 숨쉬는 역사를 만들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제주 4·3과 경남 거창 학살과 관련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지난해 노근리 학살이 언론에 집중 조명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제주와 관련해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4·3 사태'에서 벗어나 '실체로서 4·3의 진상'을 찾으려는 결정적인 노력으로 눈길을 끈다.

정부가 지난 10일 대통령령으로 공포한 4·3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부차원의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서둘러 구성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정부측에서는 국민적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편향되지 않는 인사들을 위촉한다는 내부방침을 아울러 내비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초점은 이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장을 맡게 된 국무총리 서리에 쏠려 있다. 그가 바로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한 모법(母法)인 4·3특별법을 훼방하며 우익인사들이 제기한 위헌소원을 적극 지지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한동 총리서리는 며칠 전, 총리를 맡기까지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느냐는 기자들의 추궁에 본인도 민망했던지 "총선기간 선거전략상 극단적인 얘기를 했지만, 공동정권을 출범시킨 자민련으로서는 국가경영이라는 대의에 따라 소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얼버무렸다. 그는 또 자신을 수구적인 보수가 아니라, 개혁 지향적인 보수로 평한다고 총리 취임식에서 밝히고 있다.

4·3특별법 위헌 지지에 관해서도 이한동 국무총리 서리는 자민련이라는 정당차원에서의 주장이었지, 개인적인 소신은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며 발뺌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솔직히 밝히기를 요청한다. 더 나아가, 자민련도 이젠 책임있는 공동 여당의 한 축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여 4·3특별법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앞장설 것을 주문한다.

제주도민의 처지에서는 반세기 전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니 한라산에 휘발유를 뿌려서라도 없애야 한다"는 망령이 국무총리실 소속 '4·3 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또 다시 맴돌지 않기를 간곡히 희망한다.<양석완·제주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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