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에서 알렉산더는 그토록 안식처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가도 쉴 곳은 없다”는 말로 원정길의 목적을 압축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거대한 제국건설의 역사는 극히 개인적인 콤플렉스와 채우지 못한 끝없는 욕망들이 이룬 것들이다.

영화배우 이은주. 모든 죽음이 그렇듯 그녀또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불같이 타오르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식혔다. 안식처를 찾기 위해 끝없이 연기에 탐닉했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듯 하다. 정상급 여배우란 수식어와 스포트라이트는 점점 커지는 삶의 공허함을 극복할 것도, 비견할 것도 아니었다.

치열하고 처절했던 삶과 싸움은 반대급부로 한국영화계에 적지 않은 화제작을 양산했다. 안식처를 찾기 위한 싸움은 그녀를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게 만든다. 「송어」부터 「주홍글씨」까지 10편의 필모그래피는 동 연령대 배우들에 비해 많은 편수이면서, 멜로·공포·스릴러·대서사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던 연기의 투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고 3시절 찍었다던 「송어」와 실질적인 데뷔작인 「오! 수정」, 천만관객 동원을 견인한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지막 작품이 돼버린 「주홍글씨」는 그녀의 연기의 혼을 짙게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배우가 된 설경구의 초년작인 「송어」에서 이은주는 비록 조연급이지만 영화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열쇠로 당시 주연이던 강수연에 뒤지지 않는 매력을 발산하며 주목받는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에서 그녀는 두 주연 문성근과 정보석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양수정’역으로 열연, 오묘한 매력을 맘껏 발휘한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명실상부 한국영화 중심에 선 배우로 주가를 올린다.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영역을 늘리던 그녀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다시한번 흥행배우로서 파워를 입증한다. 하지만 혼신의 연기를 펼쳤음에도 흥행·작품평가에서 실망의 결과를 보인 「주홍글씨」이후 들려온 그녀의 죽음은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유서에서 “왜 그 책(시나리오)을 내게 줬는지”라는 문구로 그녀의 죽음이 ‘주홍글씨’와 관계가 있다는 추측이 있지만 단지 추측일 뿐이다. 이제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불씨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가마를 감싸는 불꽃이 훌륭한 도자기를 구워내듯 연기에 혼신의 불을 지핀 그녀는 25세, 짧은 생애동안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하늘에선 부디 안식처를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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