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1=희생자 선정·보상대책

제주4·3이 발생한 지 벌써 57년. 당시의 아픔을 딛고 ‘화해와 상생’을 얘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기만 하다. 그날의 상처를 온몸에 품은 채 살아가는 후유장애인들의 삶이 그렇고 아직도 ‘전과자’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수형인들이 그렇다. 왜 죽어야하는지조차 모른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수형인들에 대한 ‘희생자’인정, 후유장애인과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때라야 4·3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4·3진상보고서는 4·3당시 열렸던 군법회의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군법회의 대상자 중 재판을 받지 않고 수감됐거나 형식적으로 치러진 재판이었음을 생존자들이 증언하고 있기 때문. 사실상 당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재판임으로 ‘원천무효’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4·3당시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면서 진행된 군사법정은 2530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고, 사형을 포함하면 이 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적용된 국방경비법은 법적 형식을 갖추지 못했고, 제대로운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 3월17일 4·3중앙위는 수형자 606명을 희생자로 인정했지만 형량이 무거운 주민은 포함시키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보고서 채택과 대통령의 사과도 이뤄진 만큼 이제는 가시적인 조치가 따라야 한다. 정부는 ‘전과자’라는 오명의 세월을 살아온 나머지 수형인에 대해서도 시급히 희생자로 인정해야 한다. 아울러 당시 재판에 대한 무효처리 또는 포괄적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야 함은 당연하다.

현재 4·3특별법에 의한 금전적 보상은 후유장애인에 대한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 정도가 고작이다. 아무런 죄도 없이 토벌대가 쏜 총에 맞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려오다 최근 의료비를 지원 받는 후유장애인은 175명. 이들에게는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 전액이 지원되지만 특별법에 명시된 의료지원비는 ‘쥐꼬리’수준에 불과,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난 3월28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린 4·3증언 본풀이 마당. 증언에 나선 4·3피해 당사자들은 일상처럼 반복되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쳐야 했다.

4·3당시 남편과 시어머니 등을 모두 잃은 후 경찰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양중윤 할머니(79·제주시 화북동)는 “비가 오거나 몸이 조금만 고단하면 지네 같은 게 몸에 ‘좌르르’ 흐르는 것 같아. 그렇게 살아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4·3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이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까지 했지만 이들 후유장애인의 삶은 여전히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4·3특별법 제정당시 유족들과 도민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주력한 나머지 보상문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아픔을 끌고 갈 수는 없다. 반세기 넘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후유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보상책 마련은 시급하다. 아울러 개별보상은 아닐지라도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시험이나 채용, 사업시행자 모집 등에 특례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7개 건의사항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유족에 대한 생계비 지원’이 포함된 만큼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함은 당연하다.

이게 바로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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