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불법 사행성 놀이에 멍드는 아이들

수업이 모두 끝난 뒤인 오후 5시. 제주시내 J교 인근 문구점에서 만난 아이들 중 대부분은 오락기와 뽑기 앞에서 발을 뗄 줄 모른다.

벌써 다섯 번째 뽑기에 도전한다는 태호(가명?1)가 노리는 것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요요’. “전에는 손목 무전기를 2개나 뽑았다”고 자랑이다. 얼마나 들었나는 질문에 “글쎄요. 좀 많이요”한다.

버튼을 누르느라 혀까지 빼문 경수(가명?2)의 눈앞에는 ‘선혈이 낭자’한 화면이 반복되고 뒤에서 기다리던 동생은 이제 집에 가자고 발만 동동 굴렀다.

△폭력·도박 무감각증 우려=초등학교 앞 문구점 등에 설치된 불법 사행성 게임기들이 어린이들에게 폭력과 도박에 대한 무감각증을 키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문구점 등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일명 ‘가위바위보’ 게임기는 100원을 넣고 버튼을 누른 뒤 가위바위보를 해 이겼을 경우 최저 100원에서 최고 2000원까지 현금 또는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코인을 지급한다.

숫자를 맞추거나 짧은 시간에 버튼을 많이 눌러 묵찌빠 게임을 해 이기면 100원부터 2000원까지 카드를 발급, 과자 등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경우도 있다.

‘뽑기’역시 인기 아이템. 요요는 물론 손목 무전기, 열대어까지 상품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조잡한 제품들인데다 값싼 저질 불량식품을 손에 쥐는데 그친다.

폭력성도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주로 피가 튀는 격투 게임이 주를 이루며 상대방을 죽여야 끝이 난다.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어린이들이 마치 중독증에 걸린 듯 몰두하는 모습은 이제 새삼스러운 모습도 아니다.

이는 게임장이 아닌 일반 영업소에 게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싱글로케이션 제도’ 시행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는 싱글로케이션 제도에 따라 한 문구점당 2대 이하, 그리고 문구점 내부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문구점은 거의 없다.

거리에 설치된 등급분류필증도 없는 무적 게임기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오히려 흔한 모습이고 문구점안에 많게는 4대 이상의 게임기가 설치된 곳도 있다.

△교육 당국 ‘나몰라라’=불법 사행성 게임기들은 그러나 단속의 사각지대에서 성행하고 있다.

대부분 불법 사행성 게임기의 경우 오락 제공이 목적일 경우 단속 대상에 포함되지만 초코볼 등을 넣은 자동판매기로 위장할 경우 ‘오락제공만이 아니라 과자류 자동판매가 주기능’이란 이유로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사행심 조장 방지를 위해 생활지도를 강화해야할 의무가 있는 교육인적자원부 역시 사실상 이에 대해 거의 무관심한 수준이다.

지자체들도 불법 게임기를 자진 철거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수거 후 폐기하고 형사고발 등 강력히 조처해야 하지만 대부분 소극적 대응에 머무르고 있다.

일선 학교의 무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학교 주변에 몰린 문구점들은 학교보건법에 의거해 설치되는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 내에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장과 교사는 학교 주변 유해업소를 수시 점검 및 계도하고 이러한 불법 사항이 지속될 경우 교육청 또는 관련기관에 고발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이를 이행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

한 학교 관계자는 “영업행위 등과 직접적으로 맞물린 부분으로 학교에서 이를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다”며 “영업주들의 도덕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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