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이 우거지고 이끼 낀 바위가 드문드문 있는 숲길에 눈가리개를 한 학생들이 무리지어 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 그 짝은 언어장애인이 되어 길을 나선다. 돌에 발이 채어 넘어지기를 몇 번. 그래도 목표 지점까지 누구하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탐라교육원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2박3일 동안 실행하고 있는 ‘미래를 여는 교육활동’의 한 장면이다. 장애인의 고통을 직접 체험, 일상 생활 속에서 장애인이 느끼는 어려움과 상대를 신뢰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되는 수련과정이다.

활동은 3단계로 구성된 ‘심성계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모르는 학생끼리 서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교제하는 첫 단계, ‘나’를 재발견하고, 미래 설계를 하는 두 번째 단계, 서로에게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전하는 마지막 단계로 마무리 되어진다. 요즘 청소년들의 비행이 늘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돌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발표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순수하고 밝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일단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자기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자신의 뜻을 나눈다.

‘생활예절’ 분임활동을 하면서 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데, 특히 ‘언어예절’에 대해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다. 교육 현장에서 무심코 던진 말이 아이들에게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친밀감이 형성된 상태를 인정하고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지만 학생들에게 아픔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우치면서 나 자신의 언어 습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분임활동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반면 교사의 역할을 하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역지사지의 교훈을 주는 역동적인 체험의 장으로 전개되므로 그 묘미를 더 하게 된다.

2박3일 동안 학생들은 다채로운 수련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다시 가정, 학교, 사회에서 또 다시 분주한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학생들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고 나면 왠지 서운한 느낌이 몰려온다. 나는 이들이 심성 수련 중에 지녔던 마음자리를 그들의 삶의 도정에서도 역경을 극복하고, 옹골차게 도전하여 젊은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나의 심기를 그들에게로 지향한다. 산새들의 재잘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데 좋은 하루가 또 지나간다.
<김철호·탐라교육원 교육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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