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후유장애인 진아영씨(작년 9월 8일 90세로 사망), 일명 ‘무명천 할머니’가 누워있는 성이시돌목장내 새미소오름에는 오늘도 개민들레 몇 송이가 소곤대고 있었다.

꽃들은 알는지, 평생 이야기 한번 못해보고 절규인지 울음인지도 모를 소리만 삼키던 할머니를. 그녀가 4·3으로 잃어버린 것은 아리따운 청춘만이 아니었다.

턱이 날아가고 정신이 날아갔다.

4·3관련 자료에서 할머니는 4·3당시 토벌작전 와중에 날아온 총에 턱을 잃게됐다는 대목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30여 년을 살았던 집이 아직 남아 있다. 선인장마을로 알려진 북군 한림읍 월령리 380번지를 주소지로 둔 할머니 집은 생전에 결혼하지 않아 슬하에 자식이 없던 그녀를 위해 일가친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련한 거처라고 한다.

그 집안에는 할머니 체취와 함께 처녀시절 사진과 하얀 무명천과 옷가지, 열쇠꾸러미들이 녹이 슨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한때는 할머니 집을 보존해서 그녀를 기억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최근에야 오는 9월 8일 할머니 2주기 추모제에 맞춰 할머니 집을 유적지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

그녀는 그야말로 약자였고 소수자였다. 그런 할머니가 이념의 대립과 전쟁으로 치달았던 역사의 갈등들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몸소 보여줬던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4·3당시 희생자 100명 중 24∼25명이 여성이었음에도 발표된 4·3관련 자료 중에는 여성에 대한 자료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지금 ‘무명천 할머니’의 지난한 삶의 궤적들은 기억되고 기록되야 한다.

이제 4·3속의 여성사를 이야기 할 때다. 여성관련 유적지들, ‘김녕리 부녀자 피신 민가궤’,‘조천읍 서우봉 몬주기알, 생이봉오지’,‘태흥리 모자쌍묘’와 ‘무명천 할머니 집’을 보존하는 것은 4·3과 제주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현순실·문화부차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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