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활어가 뛰노는 모습보다 묵묵히 발효된 된장같이 깊은 맛"

‘권투’는 사각의 링에서 1:1로 붙어 그야말로 ‘주먹’믿고 싸우는 어쩌면 단순무식한 스포츠다. 피와 땀이 튀기는 이 파이터들의 향연에 쾌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을뿐더러 잔인성을 내세워 수준이하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꽤 있다. 그러면서 권투엔 ‘고독’이란 단어가 녹아있다.

승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 논리를 대변하고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인생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종목으로 권투만큼 들어맞는 게 없다.

허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이런 ‘권투’의 큰 틀엔 관심이 없다. ‘권투’는 인생을 살아가는 수단일 뿐 정작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듯 하다.

굳이 권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설명가능한 말들을 말이다. 권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지릿한 땀냄새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이스트우드의 ‘링’엔 어떤 감정의 교차점이 있다. 트레이너 프랭키(이스트우드)가 치열한 훈련을 통해 링에 올린 메기(힐러리 스웽크)가 상대를 한명씩 쓰러뜨릴수록 그 교차점은 분명해진다.

‘권투’는 꿈을 찾으려고 무한히 주먹을 날리는 매기와 꿈을 잃어버린 프랭키의 만남의 결실이다. 권투경기는 두 사람의 감정을 연결하는 끈이다. 영화는 관중이 꽉 들어차 있는 경기장 속에서 두 사람의 표정을 담는다. 영화 속 권투는 권투자체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살면서 바라온 것들을 채워나가는 두 사람의 희열이 더 뚜렷이 드러난다.

동종 영화인「주먹이 운다」가 기존 가족에 대한 정(情)과 결합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라는 매개체로 합일을 이룬 사람과 사람의 연(緣)을 그렸다.

이스트우드는 기존 권투의 철학에 덧붙여 자신이 살면서 보고 느낀 삶의 가치관을 덧칠했다. 노장이 겪은 세월의 힘이 고스란히 빛을 발한다. 영화는 ‘링’안에서 싱싱한 활어가 뛰노는 모습보다 장독에서 묵묵히 발효된 된장같은 깊은 맛이 느껴져 몇 번을 봐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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