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상영되고 있는 ‘에린 브로코비치’는 매우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꽤 볼만한 영화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환경의 중요성과 기업의 부도덕성 그리고 이에 맞서는 여성의 힘에 있었음에도 그리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2시간 내내 반쯤 벗은 듯한 여배우의 가슴에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대중 흥행을 염두에 둔 의도된 계산이었겠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것이 오히려 여성을 천박하게 보거나 또는 비하할 수 있어서 하는 말이다.

줄리아 로버츠라는 인기 여배우와 그녀의 볼륨있는 몸매를 통해 자칫 딱딱하기 쉬운 소재에 재미를 가미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이 너무 지나쳐 좋은 평을 놓지고 말았다. 내용 전개에 조금만 더 충실했더라면 ‘에린 브로코비치’는 호평을 받고도 남는 영화이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번의 이혼 경력을 가졌고 파산직전에 처한 세 아이의 엄마가 외로운 투쟁 끝에 환경오염을 은폐시킨 대기업으로 하여금 미국사상 최고의 보상금을 지불케 했던 실화였기에 아쉬움은 큰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사회의 이중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세상을 바꾼 한 여자의 힘에 감탄하면서도 그 여자의 가슴과 짧은 치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회의 이율배반이다. 또한 아줌마의 당찬 도전성을 한껏 부풀려 놓고서는 아줌마는 언제나 야단스럽고 체면이 없는 모습으로 보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21세기는 환경과 여성의 세기라고 한다. ‘에린 브로코비치’의 한 편 속에는 이 두가지 문제가 혼재되고 있다. 어쩌면 환경과 여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두 문제가 전적으로 사회의식과 수준에 달려 있는 점이 그렇고 전통 풍습 그리고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그렇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환경과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늘 배반하고 있는 모순덩어리로 뭉쳐 있다. 환경이 우리 모두가 지켜야할 마지막 윤리라면 여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원천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선전문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기적같은 이야기’와는 달리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기억에 남는 것은 로버츠의 가슴뿐이라면 너무 심한 평일까.<김종배·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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