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 산다는 것은 한 사람의 가슴속에 무덤 파는 일이라고 했다.

과연 이 말이 맞는 말일까? 제주의 4월은 꽃피는 4월이 아니라 피로 물들인 4월인 것을….

몇 대에 걸친 恨으로 부인은 동반자의 서러운 죽음으로 화병으로 죽고 이러한 환경에서 사는 자식은 바다에 가서 빠져죽고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가슴에 품은 멍은 세월이 가면 희미해진다 한들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는 것, 남의 눈을 피한 채 피울음을 운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나도 어릴 때 기억이 이렇게 내 생전을 좌우하는 일은 나도 모른 일이다.

나의 등단 작품에 4·3을 얘기한 시가 있다.

제목은 ‘콩 삶는 날’.

콩 삶는 날 우리 집은 새벽부터 술렁이고
나무도 삭정이는 덜 무른다고
등거리 나무로만 모아다 놓고
이렁이렁
불밑에 둘러앉아
자청비야 익어가는 할머님 옛 이야기
제 물에 감자도 따라 읽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
4·3 항쟁 중천에 목메어 가던 아방들의 얼굴들
그 날부터 우리 어멍들은 三多의 恨이 열리고
비리 먹은 몽생이 같은 자석들
어깨에 이멍
산으로 이어도 사나
지아방 지어멍 눈물 삶으며
살아온 이웃들
우리집 콩 삶는 날
몽당 치마들의
서러운 이야기가 활활 타오른다.

죽음이 서러운 죽음만큼 가슴가슴 마다에 오래오래 기억 되기를….

릴케는 한 인간의 죽음은 그 인간과 함께 태어난다고 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죽음으로 자기다운 죽음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죽든 소총에 맞아죽든 가장 두려운 것은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짧은 의식 무덤 파는 자들의 일이고 그들의 근육 억세고 그들의 삽 예리해도 그들은 결국 묻힌 자를 다시 인간의 마음 속인 것이다. 그 사람이 죽으면 또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옮겨가 살게 될 것이다. 위의 글 중에는 릴케와 예이츠의 글을 더러 인용한 글이다.

올 여름은 너무나 더운 것 같다. 그럴 수록에 저질의 책을 읽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더위를 잊기엔 고전으로 양서를 읽는게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제작년 여름에는 시원한 山寺에 가서 살았는데 스님의 책장에는 최인호 선생님의 책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길 없는 길」 전집을 다 읽고 나서 최인호 선생님이 사는 서울 쪽으로 향해서 삼배를 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한 사람의 대단한 양식, 우리 모두를 깨닫게 하고 마음 살찌게 하는 것임을….

건방진 것 같지만 그 어간에는 러시아 고전으로 많이 읽다가 한국 책을 접할 일이 없었는데 방학이면 더러 오시는 임철우 선생님의 「봄날」이라든가 김사인 선생님의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이라든가 이청준 선생님의 문학상 작품집이라든가 그 외의 안면은 없지만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이 여름은 더위를 잊고 살 것 같다.

이러고 보면 자유인인 나는 무척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역시 시인이라 산문 같은 것을 쓰면서도 시조 한편 쓰고싶다.

오늘이 마침 보름이라 바다의 비친 달빛 은을 쏟아 부은 듯 반짝이고 범섬은 나의 수석 정갈하게 좌정 했다. 우리도 오늘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면 어떨까?
<현주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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