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곁에 다가왔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는 이 한마디에는 자연의 변화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면서 살아간다는 건강한 삶의 방식 즉, 양생(養生)의 원칙이 표현되고 있다. 봄과 여름 동안 따뜻하고 더운 기운과 함께 밖으로 향하여 화려하게 피어났던 것들이, 가을이 되면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이 나타나면서 안으로 향하여 모아지기 시작하므로, 우리의 생활도 바깥활동을 많이 하고 밖으로 일을 벌리기 보다는, 정적인 활동 속에 내실을 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표현이다.

일 년을 기준으로 이야기 한다면, 봄과 여름은 밖으로 퍼지고 성장하는 기운이 주가 되어서 양(陽)의 계절이라 하고, 가을과 겨울은 안으로 거둬들이고 저장하는 기운이 주가 되어서 음(陰)의 계절이라고 한다. 또, 하루를 기준하면 해가 떠있는 시간인 낮은 양에 속하여 우리 몸에서도 양기(陽氣)가 주로 활동을 하고, 어둠이 내린 후인 밤은 음에 속하여 몸에서도 음기(陰氣)가 주가 되어 몸의 기능을 주관하게 된다. 음양의 이치 상, 항상 활동력(陽氣)이라는 것은 그 바탕이 되는 연료(陰氣)가 튼튼해야만 잘 발휘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나 생활 관리에 있어서 항상 바탕을 견실히 하는 것이 우선이 된다. 그래서 봄?여름에 열심히 밖에 나가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가을?겨울에 많은 것을 쌓아두고 준비를 하여야 하고, 낮에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밤에 푹 쉬면서 음기를 기르고 충전시켜줘야 한다.

비록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의 발달로 옛날만큼 충분히 자연의 기운을 느끼면서 살고 있지 않고, 어른들의 경우는 항상 바쁘게 지내다보니 계절을 잊고 산다고 하지만, 아직 순수하고 자연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하늘의 기운을 먹고 사는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자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요즈음은 사회가 너무나 경쟁적이고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로 되면서, 아이들마저도 이런저런 학원들로 여러 가지를 배우러 다니기 바빠, 하늘이 높아지고 나뭇잎 색깔이 변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가을만큼은 아이들에게 경쟁적인 외부활동을 조금 줄이고, 책을 많이 읽어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던져주어 마음의 음기를 기르고, 조금 게으르다 싶을 정도로 활동을 줄이고 해가 떨어지면 일찍 자게 하면서 내년과 내일의 활동을 위해 몸의 음기가 충만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은 어떨까하고 엄마 아빠께 제안해 본다. <현경철·한의사·제민일보한의학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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