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비하여서는 많이 줄기는 했지만, 손목을 불쑥 내밀면서 "어디가 아픈지 봐주세요?"라고 물어오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등을 통해서 한의사들은 맥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 선입관이 형성된 듯한데, 한의학에서는 맥만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한의학에서 진단을 할 때에는 치료할 때와 마찬가지로, 항상 전체적인 몸 상태를 파악하고 나서 개개의 증상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데,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지표가, 표리(表裏) 한열(寒熱) 허실(虛實) 음양(陰陽)의 8가지 항목이고 이를 팔강(八綱)이라고 한다. 표리라는 것은 병이 인체 내에서 머무르는 부위을 말하고, 한열이라는 것은 병이 인체에 작용해서 표현되는 양식을, 허실이라는 것은 환자의 체력의 정도와 들어온 병의 세기의 상관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이고, 음양은 이러한 것들을 총괄하는 항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단을 하기 위해서, 망문문절(望聞問切:보고 듣고 물어보고 만져보기)의 4가지 방법(四診)을 이용한다. 망진은 보고 진단하는 것으로 안색이나 체형, 행동, 걸음걸이 등을 보고 파악하는 것이고, 문진(聞診)은 들어서 진단하는 것으로 목소리의 톤, 기운이나 말투, 그리고 대소변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도 포함된다. 문진(問診)은 물어서 진단하는 것으로 자세한 병의 양태나 상황, 지나온 경과 등을 파악하는 것을 말하고, 절진은 배나 등, 맥 등의 양상을 직접 접촉을 통해 파악하는 것으로 각각 복진(腹診), 배수진(背?診), 맥진(脈診)이라고 한다. 이처럼 진단을 할 때에는 맥진 한가지만으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고 4가지 방법을 종합하여 팔강적인 진단을 하게 되는데, 이를 사진합참(四診合參)이라고 한다.

의사표현이 정확하지 않은 아이들의 진단에 있어서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거나 뛰어노는 모습, 엄마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의 관찰과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는 목소리나 자세, 눈 맞춤의 양상에서부터 진찰이 시작되고, 질병의 양상은 물론이고, 식사나 수면습관 등 생활의 방식이나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에 대한 자세한 질문을 통해서 음양허실표리한열의 팔강적인 진단을 하게 되는데, 복진이나 맥진의 경우는 어른들에 비해서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고 보조적인 의미로 주로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아이 맥 좀 잡아주세요”라고 물어오는 엄마들에게 “맥을 통해서 어디가 아픈지를 통보받으려고 하지 말고, 드러나는 일상생활에서 아침에 스스로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건강의 척도로 삼으세요” 라는 충고를 해드리곤 한다.

<현경철·한의사·제민일보한방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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