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자씨, 14일 ‘제주의 역사문화와 고문서’ 세미나 밝혀
조선후기 제주의 상속관행은 남녀간 차등상속이 행해졌고, 딸을 제외한 자식간 윤회봉사(제주에선‘돌림 제사’)가 일상화됐다는 의견이 나왔다.

문숙자씨(국사편찬위원회)는 14일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린 ‘제주의 역사문화와 고문서’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문씨는 북제주군 애월읍 장전리 강태복 소장의 분재기(分財記. 재산 상속·분배 기록문서)와 서귀포시 하원동 강성택 소장의 분재기를 통해 타지역과 다른 18∼19세기 제주도 가문 내의 상속관행 특징을 살폈다.

문씨는 “자녀간 차등분급은 외려 조선후기의 시대적 대세였다”고 전제한뒤 “타지역 분재기에서 남녀간 균분(균등분할)의 해소를 철저히 서문에서 명시한 것과는 달리 제주 지역 분재기에선 서문의 구속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타지역, 특히 양반가의 경우 17세기 중반에는 남녀를 아우른 균분상속과 윤회봉사가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분재기로는 장자 단독상속과 단독봉사는 찾아지지 않을 정도로 자식간 균분과 윤회봉사의 지속성의 기간은 길었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 지역의 특징이 18세기 후반 이후 현재까지도 타지역과 달리 조선후기적 가족 특징을 지속하고 있고, 이는 상속 방식이나 분재기 작성 방식 등에서 타지역에 비해 가부장권 즉, 재주(財主)의 권한이 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 씨는 이 밖에도 제주 지역 분재기의 특징으로 △별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타지역과 달리 재주(財主)의 재량권 발휘가 많지 않는 등 가부장의 상속 의지의 표출이 적었던 점 △재주사후(財主死後)에 재산을 상속하기보다는 생전에 직접 증여하였던 점 △제사 봉행은 가계계승의 의미보다는 사자(死者)에 대한 사후봉양(死後奉養)에 비중은 두었던 점 △ 정처(正妻) 사망 후 후취(後娶)를 소가(小家)로 표현하는 등 재산상속이나 제사 등에서 큰 차별을 두지 않았던 점 등을 들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혜숙 교수(제주대)는 ‘제주의 재산상속 관행’에 대해 “제주는 격식이나 형식, 의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실리적·생존전략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주장했다.

분가시 재산증여가 이뤄져 보모가정과 아들가정이 안거리·밖거리로 살면서‘부자간에도 범벅에 금 긋는다’할 정도로 철저히 독립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문씨가 두 집안의 분재기만을 사례로 든 점에 대해선 “조선시대 제주의 동남부지역은 장자를 우대해 장자상속이 거의 이뤄졌고 제사도 장남이 단독으로 치러지는 등 분재기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면서 지역별로 분재기를 비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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