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학살, 우린 ‘제노사이드’라 이름한다. 제노사이드는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제노스(genos)와 살생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 사이드(cide)의 합성어다. 제노사이드는 폴란드 법률학자인 라파엘 렘킨이 만든 용어다. 렘킨은 1944년 국제법에서 집단 학살을 범죄로 선언할 것을 제안하면서 제노사이드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제노사이드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1945년 2차대전이후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전범을 기소할 때였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제노사이드에 관한 협약’이 체결됐으며 특정 국가나 종족, 인종 또는 종교 집단을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파괴할 의사를 갖고 자행하는 행동을 제노사이드 범죄라고 정의를 내렸다. 제노사이드엔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만 있지는 않다. 백인에 의한 북아메리카 인디언 학살, 태즈메니아의 비극, 터키의 아르메니아 살육, 보스니아·코스보의 인종청소, 프랑스의 알제리 학살, 르완다의 종족분쟁 등이 제노사이드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제노사이드가 있을까. 「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 저자인 최호근씨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나라엔 제노사이드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간인 집단학살 가운데 국민이나 민족, 인종이나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예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 우리나라에도 제노사이드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국가에 의한 학살과 정치적 학살도 제노사이드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저항수단이 없는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바로 제노사이드며, 그런 의미에서 4·3도 분명한 제노사이드일 수밖에 없다.

4·3 주간이다. 수만명의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58년전 숨져갔다.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몰랐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왜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를 몰랐더라도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왜 그들이 죽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4·3은 국사 교과서에 제대로 담겨 있지 않다. 그러기에 도내 교육계의 몫이 중요하다. ‘4·3 때 묵념을 하라고 행정지시를 내리기 어렵다’며 숨죽이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4·3을 이야기하면 안될까. <김형훈·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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