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고 입구에서 아라중 방향으로 들어서자 마자 마주하는 박성내.

10여년 무심코 바라본 곳이다. 그 앞을 지나치면서 한번도 죽음이나 학살을 떠올려 본적은 없다. 어린 시절, 서글프고 무서웠던 것은 처녀귀신이 나올법한 공동묘지이지 수백명이 처참하게 죽어간 4·3 학살터라는 것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미지의 사실이다.

박성내는 조천면 관내 청년 100여명이 집단학살 당한 곳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박성내 위의 다리, 오등교에서 봤을 때 북쪽으로 20m 정도 내려간 일대가 희생터다.

1948년 12월 21일.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와흘리, 함덕, 신흥, 조천, 신촌 등 조천읍 지역 청년 200∼300명이 대거 자수를 감행한다. 함덕 주둔 군인들은 자수자들을 트럭에 싣고 간 후 일주일후 박성내로 끌고 가 학살을 자행한다.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고, 시체 더미 위에 석유를 뿌려 불을 살랐다.

이 지옥 같은 학살현장에서 두 명이 살아남아 참혹한 현장을 전했고, 어떤 이는 박성내로 이동하는 트럭에 올라탔으나 우연찮게 떨어져 살아남았다고 한다.

또 김순동씨(77)는 아버지를 여기서 잃었고, 인근에 살았다는 현광하씨(78)는 말랐던 하천이 죽은 이들의 피로 가득 넘칠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이유도 모른 채 삶과 사를 넘나들었던 것이다.

박성내 바로 인근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거리공연팀 테러J는 매해 가을 거리예술제를 가질 때면 잊지 않고 이 곳, 박성내에서 4·3영혼을 위무 하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진혼행사를 마련한다. 4·3행사가 봇물을 이루는 4월에 이뤄지는 자리가 아니기에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행사다. 핏빛 사연을 숨긴 채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히 자리한 그 곳을, 우리는 4월만이 아닌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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