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행동이 세계를 움직인다.’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의 지세화(지방의 세계화) 재발견은 전 세계적인 지자체장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지난 취임사에서 김지사가 밝힌 청사진은 신자유주의와 국제화라는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각박한 경제전쟁 속에서 우리 제주도가 당면한 문제점들만 나열했을 뿐 정작 제주도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비전은 없어 보였다. 도지사의 취임사치고는 너무 추상적이고 빛바랜 구호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느끼는 견해일까? 신선하고 강력하고 구체적인 것을 바라는 도민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주를 이렇게 변화시킬테니 희망을 갖고 동참하자고 딱 분질러 주는 슬로건 하나 못 만드는 지적 통찰력이 아쉽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05년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 56.2%인데 반해 39.3%로 재정자립도가 매우 취약한 형편에서 특별자치도 설정은 자칫 공염불로 끝날 수도 있다. 타도에 비해 도세가 열악하고 자연자원이 빈약해 기댈 것이라고는 해외자본 유치인데 이는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는 지방정부의 제도적 역량 형성(institutional capability building)이 얼마나 돼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지난 15년간의 외자 유치에 대하여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도민들 사이에 갈등과 논란을 증폭하면서까지 제주도특별법,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만들었으나 위 법률들에 의한 프로젝트 계획은 변질되었거나 지지부진되었고, 외자 유치실적 역시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업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해갈 수 있는 여건조성을 도외시 한 채 리더들이 한건 실적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졸속으로 법제정을 추진한 데에도 그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리더십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다른 지자체에 비해 외교·국방· 사법을 제외한 자치자율권이 증대되고 도지사의 권한과 통솔의 범위가 확대돼 과거보다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지역권력의 메커니즘 속에서 중심부에 위치하는 소통령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도지사의 핵심활동이 중앙정부의 정책을 지방에서 집행하는 것이었다면, 자치권이 강화된 지금 제도적으로 ‘강력한 도지사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권력 구조상에 있어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도지사의 리더십 능력과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다.

그러나 김지사의 민선 취임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로 비추어 볼 때 리더십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杞憂)일까. 각계각층은 물론 이익집단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이 때 지방정부 또한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흐름에 걸맞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도민들은 도지사의 효율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분산되고 제한된 다원적인 권력 구조 하에서는 제한적인 공식 권력만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도지사에게는 이를 보강할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고 지역구내의 이익 상충을 조정해야 할 브로커(broker) 또는 중재자(mediator)로서의 정치적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순항을 하려면 김지사 자신이 지금까지 지녀왔던 고루한 사고방식과 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지자체의 의사결정 구조와 현안 추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지도자의 리더십의 자질과 능력에 크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성실성, 합리적 사고와 행정경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자기편 네편을 가리지 않는 부드러운 정치력과 과감한 추진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지식과 통찰력, 비전(vision)과 책임지는 자세 등이다.

최근 도내 공무원들의 인사를 둘러싼 내부 공무원들 간의 갈등, 지방 NGO의 반대로 인한 이호 해양유원지개발 허가유보, 여론수렴을 빙자한 화순항 군항에 대한 정책결정 지연 등 김지사의 애매모호한 정치스타일은 지양돼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으로서 도민의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는 하나, 이번이 도지사로서 마지막 봉사할 기회라 생각하고 제주도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도민에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고 기어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리더로서의 강력한 의지와 행동을 도민들에게 보여줄 때가 됐다. <김성우 / 부경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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