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읍은 일제시대 때부터 오랜 세월 군사시설 요충지로 많은 농토와 삶의 터전을 수탈당했으며, 해방 후에도 많은 고통과 수난을 겪으면서도 6·25전란을 이겨내는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평화와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면서 제주도는 평화의섬으로 지정돼 명실공히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의 모태지가 됐다.

제주도가 평화의섬으로 지정된 것은 과거의 모든 원한과 갈등을 씻고 화해와 용서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는 의미다. 이땅에 다시는 과거와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후손들과 세계인에게 제주도를 평화의 상징으로 길이 보존하겠다는 의지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곳 모슬포에는 아직도 일제시대때 수탈당한 농토를 농민들에게 되돌려주지 않고 국방부 소유라는 이유로 방치돼 왔다.  특히 일제시대와 6·25전쟁 때의 잔재가 산재해 있지만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어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멸실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 평화를 갈망하고 제주도를 평화의섬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대정지역에 널려있는 전쟁의 흔적을 보존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제주도민은 물론 대정읍민의 가슴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정부가 제주평화의섬 정착을 위한 일환으로 모슬포 전적지에 ‘평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전적지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것도 대통령 직속기관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162억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대정읍민은 비록 빼앗긴 농토는 찾지 못해도 평화를 갈망하는 도민의 요구에 부응하기에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이를 적극 찬성해왔다. 그러나 지난 4월12일 중앙언론을 통해 이곳 알뜨르비행장을 공군 전략기지로 만든다는 엉뚱한 계획이 밝혀지면서 제주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적지 공원화 조성에 이곳 국방부 땅을 임대하거나 무상 대여할 수 없으며 꼭 필요하면 알뜨르 비행장과 맞먹는 대토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해왔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를 평화의섬으로 대통령이 직접 선포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알뜨르 비행장과 송악산 일대를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최고통수권자가 지정하고 같은 정부부처인 문화관광부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을 국방부만 안된다고 고집하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특히 국방부는 모슬포 비행장 일대가 군사요충지로 적지라서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전적지 공원조성을 하면서 그것이 거짓이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모슬포가 군사요충지로 최적이라면 어떻게 다른 곳에 대토를 요구할 수 있을까. 물론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땅을 유용하게 이용하겠다는 속셈은 알겠지만, 군당국이 진정으로 평화유지를 위해 존재한다면 총칼보다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속 다짐을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군사시설보다 더욱 평화를 유지하는 최대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방부는 그동안 우리나라 그 어느 지역보다도 대정읍민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고통을 다소라도 덜어주고 고통받았던 국민들과 같이 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무상임대던, 장기임대던 하루속히 결단을 내려주길 요청한다. 아픈 역사의 기록을 생생하게 보존할 수 있는 체험장이 될 알뜨르 전적지 공원조성에 군·관·민 모두 참여해 새 역사의 장을 만들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허정헌/대정읍단체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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