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이전 토요일은 마을안길 청소의 날로 정해 새벽이면 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청년들까지 마을청소에 나섰다. 또 주위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까봐 자기집 앞 풀베기와 청소를 하며 청결을 우선했다.

그런데 삶이 여유로워지면서 일상생활 등에서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일례로 정제(부엌이)에서 지들커(땔감)로 밥을 짓던 것이 연탄으로, 가스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정제란 정겨운 낱말이 주방으로 바뀌었고, 불을 때는 솥덕(아궁이)이 가스레인지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이와 때를 같이해 가연성 휴지나 지푸라기 나무들이 귀찮은 쓰레기가 돼 버린지 오래다. 생활 쓰레기 처리는 행정의 몫이 되고, 심각한 환경문제가 되면서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우리 실정에 맞는 의식교육이 필요하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현장학습 교육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란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쓰레기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행정도 재활용품은 손질하고 다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일정기간 전시해서 어려운 가정에 무상기증하거나 경매에 붙여 주민들이 재활용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도록 해야 한다. 홍보 전단지나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쓰레기 줄이기 아이디어도 공모, 실효성 있는 쓰레기 줄이기 행사를 주기적으로 전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하다.

특히 1회용 쓰레기는 엄격히 규제를 해서 휴대할 수 있는 것은 휴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을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호텔방에서 1회용 면도기나 칫솔은 찾아볼 수가 없다. 행사장에도 불연성 병이나 캔 등 재활용이 되지 않는 것은 반입을 규제하고 있는 것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실천하는 것은 다소의 불편이 따르지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준다. 실천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근본적인 사고가 바뀌지 않고 실천하지 않은 한 국가의 선진화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쓰레기 처리의 관심은 지위 고하가 따로 없다. 옛날 배고플 때를 생각해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강영수 / 우도면 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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