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이 스스로 지명 철회를 요청하면서 헌법재판소장직의 꿈을 포기했다.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횡포 때문에 결국 그 뜻을 접은 것이다. 이것은 능력있는 여성 개인의 좌절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 정치수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이번 사태에 투영된 정치판의 비열한 모습은 정치 발전을 기대하는 국민의 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하여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장 단상을 점거, 물리적으로 국회의 정당한 임명 동의 절차 자체를 봉쇄한 한나라당의 ‘깡패 집단’ 같은 행위는 정치적 폭거이자 대의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태임에도 주요 언론은 물론 식자층 또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반의회적인 폭거를 행사한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나라당의 기세에 밀려 협상조차 제대로 이끌지 못한 열린우리당의 소극적인 태도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국회 과반수의 의석을 갖고도 한나라당의 눈치만 살피다가 결국 국회운영이란 미명하에 사태를 종용하기에 이르렀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하랴. 헌법 최고기관의 수장인 헌법재판소장이란 직책이 정치판의 흥정 대상이 돼야 하는 건지 아쉽기도 하거니와 야비한 방법으로 정치적 희생양을 삼은 이들이 오만한 행위에 대해 잘못을 뉘우치거나 국민에게 미안해 하는 기색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대통령을 굴복시켰다고 희희낙락하는 낌새이고 보면 더욱 우울해 진다.

탄핵이나 행정수도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통령과 같은 견해를 표시했다는 이유로 전효숙 씨가 탄핵받아야 한다면 그 집단이야말로 또 다른 코드집착의 파시스트들이 아닐까.

애초 불거져 나온 임명 동의 절차 문제는 작은 핑곗거리에 불과했다.  청와대가 절차상 하자를 치유한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이 임명 동의에 대한 표결 자체를 막은 것을 보더라도 정치공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신성한 의회정치를 패거리 정치로 희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릇 국정책임을 논할 때는 야당 보다는 정부나 집권 여당의 책임을 묻는다. 그럼에도 이번 헌재소장 사태를 야기한  한나라당의 야만적 행태는 통상적인 야당 비판 수준을 넘어 과연 차기 대권을 넘나보는 정치집단으로서 그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정말 안심하고 국정을 맡길 수 있을까 같이 생각해 볼 터이다. 전 전 재판관이 자식이 병역문제에 연루되었다거나 어느 후보자처럼 부동산 투기를 한 전력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도 없는데도 말이다. 굳이 하자를 들먹이자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쉽게 헌재 재판관직을 사직한 경솔함은 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이 그 티끌 같은 허물을 트집 삼아서 사퇴를 시킬 만큼 결백한 집단인가. 차떼기 정당이라는 과거의 오명이 다 씻길 만큼 개과천선을 했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을 이 핑계 저 핑계로 폄하하다가 결국은 그렇게 수모를 주면서 끌어내릴 수 있었는가.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의원들마저도 은근 슬쩍 비호하는 그들이 아니었던가.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졌다고 하여 인사권이라는 합리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게 무슨 민주주의이고 의회정치란 말인가. 우리는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향후의 정국을 살펴 볼 일이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지말라는 법이 없는 한 그러한 행위가 언젠가는 더 큰 부메랑이 되어 앙갚음 당할 수 있음을 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후보자에 대한 자질이나 수행 여부의 평가는 의원 개개인의 표결 절차를 통해서 다수결의 법리 원칙을 당연히 적용하면 될 것을 이를 모르는 의원들이 무슨 염치로 세비를 타려하는 지 대한민국은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다. <김성우 / 부경대학교 국제대학원 일본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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